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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안전쾌적하게 살 권리, 출신국가나 비자에 따라 달라지나

매일노동뉴스 기고

최근 이사를 했다. 28개의 건물로 이뤄진 기숙사 단지에는 학생·박사과정생·인턴·교육훈련생 등이 거주한다. 그중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지은 지 60년이 넘은 2층짜리 건물로, 32명 남짓이 살고 있다. 책상과 옷장, 침대가 있는 3평짜리 방은 문화재보호와 창문 통일성 유지 때문에 언제 리모델링했는지 모를 오래된 상태 그대로다. 씻고 나면 물이 발에 찰랑찰랑거리는 화장실 하나를 8명과 공유하고, 누가 내 오렌지주스를 훔쳐 마시고 죽은 벌레도 심심찮게 나오는 주방 한 곳을 16명이서 공유한다. 최근 이 건물의 한 방에서 빈대가 또 다시 발견됐고, 내 동기는 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학교보다 옆의 도시가 더 가까운 시 외곽에 위치한다.



삶의 질이 뚝 떨어졌지만, 이사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짧은 비자 기간과 외국인이라는 특성으로 집주인과 업체에게 후순위로 밀리고, 학생이니 소득 측면에서 기피대상이다. 집 구하는 것에 난항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소득증명서와 통장내역 등을 증빙하고 면접에서 비흡연 등을 어필한다고 전제해도, 수요가 넘치는 베를린에서 내가 집을 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힘들다. 지출해야 하는 금액도 지금보다 배 이상일 것이다. 언어소통에 어려움도 있으니 정보접근성도 떨어진다. 불만이 있어도, 학교를 통해 얻게 된 이 기숙사가 최선이다.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기숙사 문제를 보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겠거니’ 하는 마음은 나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악해도 다른 갈 곳 없는 상황과 대안 없는 답답함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가건물·컨테이너 박스·조립식 패널·비닐하우스가 숙소로 주어지더라도, 방한과 방열이 되지 않는 숙소더라도, 거주를 위한 기본적인 시설이 없는 곳이더라도, 월급에서 기숙사 비용을 상당히 떼여도, 개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사업장에서 제공하는 시설이 아닌 다른 시설을 구하기란 언어와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비자 연장이나 재입국의 문제도 있고, 대중교통망이 열악한 지역에서 일한다면 일하는 곳과의 거리와 교통수단은 다른 집을 구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난관일 것이다.



지난 2월에도 경기도 파주시의 한 이주노동자가 컨테이너 숙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이번 한 번의 문제가 아니다. 화재 발생에 취약한 숙소에서 사망한 문제는 계속 있었고, 파주시에서 화재가 난 다음 날에도 이주노동자 세 명이 함께 살고 있는 경기도 김포시의 한 컨테이너 숙소에서 불이 났다. 화재뿐 아니라 재해·폭염·폭한에도 취약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농어업 분야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99% 이상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에 살며, 약 70%는 가설 건축물에서 산다고 답했다.



노동부는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토대로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농축산업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2021년 1월1일부터 고용허가 신청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2021년 7월1일부터 전업종을 확대)”하고 있으며, “기존 사업장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이용 중인 경우 외국인 근로자가 희망하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로 취업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 대한 제재나 해당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은 부족하다. 노동부는 파주시 이주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해 “이번 화재가 발생한 파주 사업장은 우리부로부터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화재가 나 사망한 노동자는 인도(우리나라와 고용허가제 MOU를 맺은 국가가 아니다) 출신이고, 난민 신청자였기에 노동부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 살 권리는 출신 국가나 비자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다. 한국은 과거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했던 국가에서 이제는 이주노동자 없이는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 국가가 됐다. 우리가 그만큼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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