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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매번 했던 뻔한 주장을 반복해야 하는 현실

매일노동뉴스 기고

습관이 몇 개 있다. 소셜미디어에 어디를 방문한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땐,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 올린다. 사는 동네를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 직장 정보도 온라인상에는 최대한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택시는 최대한 타지 않지만 일이나 약속이 늦게 끝나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할 때는 카카오택시로 동선이 남게끔 한다. 차 번호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남겨 둔다. 어둡고, 다니는 사람이 드문 길을 지나갈 땐 전화통화를 하면서 가거나 비상전화 버튼을 언제든 누를 수 있게 스마트폰을 꽉 쥔 상태로 간다.



지난주 금요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독일에 머무는 사이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은 그전보다 외진 곳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나에겐 행동수칙이 생겼다. 2022년에, 한국 나이 서른에 말이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면 부모님이 일하는 가게로 가서 밤 9시에 함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밤 9시에서 11시 사이에 집에 도착할 때는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서 타거나(배차 간격은 한 시간에 한 대다),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아빠나 남동생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정류장에서 집까지 그 단 10분을 혼자 걸어갈 수 없어서다. 집 주변에 가로등은 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여자 혼자 걸어갈 만한 환경이 아니다. 밤 11시 이후에 도착할 경우에는 집 앞까지 가는 버스 운행이 종료돼서, 근처 지하철역으로 아빠나 남동생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여동생은 이미 출퇴근을 위해 면허를 따고 차를 샀다.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든 생각은 ‘주차장에서 집까지 오는 건 안전하겠지?’였다.



내가 왜 조심해야 하나 화도 나고 답답하다. 21세기가 된 지 20년도 더 지난 이 시대에, 나도 나이가 이제 서른인데, 왜 아직도 남성 가족 구성원에게 ‘데리러 와 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아빠도 남동생도 귀찮을 테고, 나도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이 해결책밖에 없나 싶다. 직장에 야근이 자주 있으면 어떡하지, 나도 면허 따고 차를 사야 하나는 고민도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못 다니고, 하루하루를 긴장상태로 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고, 해결책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건 항상 여성의 몫인가. 범죄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내가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야 하나 억울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몇십 년째 안전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도 든다.



최근에 있었던,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여성직원 살인 사건을 보면서는 다시 불안감이 생겼다.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없다’는 현실을 새삼 다시 마주치니 생기는 불안감 말이다. 지하철은 나에게 일상적인 공간이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하루에 두 번 이상 이용하는 공간이다. 일을 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 출퇴근을 할 수 있다. 일을 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공간이다.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없다. 일터도, 지하철도, 회사도, 법원도, 경찰도. 나도 매일매일 이용하는 평범한 공간이 범행장소가 됐을 때, 나를 지켜 줄 공간도 조직도 없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아니, 왜 내가 조심하고 행동해야 하나.



또한 피해 직원에게 이 공간은 일상적인 공간이자 일터였다. 이 범죄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성폭력임과 동시에, 일터에서 일어난 성폭력이다. 직장에서의 성폭력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속적인 특성을 보인다. 일터에서 일어난 성폭력은 생존권이자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신당역에서 벌어진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살인에 대한 대책으로 “여성 직원의 당직 배치 축소”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불꽃페미액션은 기자회견을 통해 “펜스룰은 대책이 아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해당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오히려 여성이라는 성별에 책임을 전가한다”고 지적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여성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탈락시키는 채용 성차별을 저지른 바 있다. 성별 임금격차도 35.71%로 서울시 산하기관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 채용차별은 불평등한 조직을 만든다. 성평등한 조직 문화와 이를 통한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 배제’가 아닌 ‘성차별 배제’가 필요하다.



여성은 남성의 삶을 위해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부속품이 아니다. 여성은 당신과 동등한 사람이고 노동자이지, 당신의 사랑을 가장한 폭력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나의 안전한 공간을 위해 아빠와 남동생에게 마중 나오길 부탁하고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안전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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