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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일터에 무지개를 띄우자

매일노동뉴스 기고

최근 몇 년간 집회를 떠올렸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민주노총 부스를 본 것이다. 이미 보호받는 노동자의 조직이라는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공간에는, 노동조합이 절실히 필요한 노동자 곁에 노동조합이 있었다. 탄광 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운동을 다룬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민주노총과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가 함께 공동체상영을 연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동체 상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당신의 일터에도 성소수자가 있음을 알려내고, 노동운동 안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퀴어버스’로 함께 하고,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단을 꾸리고, 그 외 셀 수도 없이 많은 집회에 함께 한, 토론회를 열고 글을 쓴 활동가들 덕분에 일하는 성소수자 의제를 알릴 수 있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아를 실현한다. 물론 적정한 임금 지급이나 안전한 일터 같은 기본 권리가 지켜지지 않기에, 노동의 주된 목적과 노조활동의 주된 내용이 임금보장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순히 돈만 번다고 일터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에게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기 바라며 직장에서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성과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성공하길 바란다. 때로는 낮은 임금이어도 인간관계 때문이나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등의 이유로 그만 두지 않고 계속 일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는 대기업에 일하지만 쳇바퀴 같은 일상, 다른 비전 등 때문에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하루 8시간 전후를 보내는 곳,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많이 일상을 나누는 곳이 일터다. 일로부터의 소외가 문제인 것이지, 노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우리가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곳 모두 노동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그러한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 노동권은 생존권인 동시에 자아실현을 위한 권리다. 단순히 돈 또는 기본소득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나는 2021년 봄을 ‘상실’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여러 성소수자가 연이어 삶을 마감했다. 일터에서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소수자 차별은 노동권의 문제다. 직장에서 ‘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제, 직장에서 편견 등의 이유로 성정체성·성적지향을 숨겨야 하는 문제, 여성과 남성으로 나눠져 있는 화장실 탓에 일하며 맘 편히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문제. 일터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에, 일터에서 겪는 성소수자 차별의 문제는 부차적이거나 부문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문제다.



직장내 성희롱이 산업재해로 여기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상식이다. 성희롱이 안전할 권리를 위협하고, 비자발적 퇴사를 선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일할 권리 그리고 생존권의 문제다. 성소수자 차별도 마찬가지다.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종의 산업재해다.



군인의, 교사의, 학생의, 활동가의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람들의, 노동자의 명복을 빈다. 변화를 만들어낸, 사회를 바꾼, 삶으로서 기억하겠다. 남은 나는 평등하게 나로서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남은 자의 몫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서울 관악구노동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성소수자’ 사업을 진행하며 소개한 앨라이(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며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지지하는 사람)가 할 수 있는 실천 한 가지를 제안한다. “일터에 무지개 띄우기”다. 당신 사업장의 성소수자가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도록, 일터에, 현장에, 책상에, 옷에, 작업대에 무지개 표식을 두는 것이다. 더 상상해 본다면, 작은 사업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심사·정체성 등을 기반으로 모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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