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오른쪽 등이 계속 아팠다. 처음에는 어깨 문제인 줄 알았다. 마우스를 손목과 어깨 통증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는 버티컬 마우스로 바꿨다. 마침 아시안핏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래서 기존보다 작아 여성에게 추천한다는 마우스가 새로 나왔다. 여성에게 맞는 크기는 언제나 기본형이 아닌 특수형이다. 근래에 들어서야 여성을 고려한 크기가 출시되는 것이 황당하나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스트레칭도 하고 온찜질도 자주 했지만, 견갑골이 아린 통증은 계속됐다. 자다가 아파서 깰 정도가 돼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어깨가 아니라 목이 문제였다. 일자목 경향이 있는데, 일자목이 신경에 영향을 끼쳐 견갑골쪽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자세를 신경 써 보려 했다. 가장 먼저 사무실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 8시간.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보다 길다. 다행히 지금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의자는 난생처음 발 받침 없이도 발이 땅에 닿는 의자다. 이제까지 나에게 사무실용 의자란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의자였다. 의자에 바르게 앉은 자세는 ‘지면에 닿은 발’과 ‘등받이에 기댄 등’이 무게를 적절히 분산하는 자세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사무실 의자란 ‘발’과 ‘등’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의자였다. 발이 땅에 닿게 앉으면 등받이에 등이 안 닿고, 등받이에 등이 닿게 앉으면 발은 땅에 뜬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는 주로 발 받침을 구해서 썼다. 출장지의 의자에 앉을 때면 발이 붕 떠 있으니 절로 한쪽 다리를 꼬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게 된다.
남성 사이즈에 맞춘 사무실 의자가 평균 신장 범위의 여성에게 주는 문제점은 하나 더 있다. 나는 이제까지 의자 등받이 위에 달린 받침대가 머리 받침대인 줄 알았다. 항상 뒤통수 위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쉴 때 몸을 뒤로 쭉 빼고 머리를 기대는 용도라 생각했다. 목에 위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기에, 저 장치가 ‘목 받침대’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바른 의자 자세를 알아보면서야 목 받침대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처럼 노동현장의 기본형은 남성노동자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제기가 됐던 것은 건설현장 등에서 사용하는 안전보호장비이다. 크기가 맞지 않는 안전보호장비는 산업재해의 원인이 된다. 몸에 맞춰 보호해야 하는 안전모·안전화·안전장갑·안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고나 근골격계질환 등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맞지 않는 용품을 직접 수선해서 쓰거나 사비로 구매한다.
노동현장 중 하나인 사무실의 기본형도 남성이다. 예를 들면 사무실의 적정 온도가 있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표준 사무실 온도가 나이 40세에 몸무게는 70킬로그램인 남성의 기초대사율을 기준으로 정해졌다고 설명한다. 중년 남성의 평균에 맞춘 사무실 온도는 젊은 여성들에게 맞는 평균 온도보다 5도 낮다. 그렇기에 사무실에서 여성들이 담요를 두르고 외투를 입고 일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외에도 문제로서 포착되지조차 못한 여성노동자의 산업재해는 많을 것이다.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종의 화학물질 위험성을 간과하는 문제, 화학물질의 허용 기준이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 문제, 기계설비가 남성에게 맞춰져 있는 문제 같은 것 말이다. 근골격계질환과 호흡기질환 같은 천천히 쌓이는 질병 문제를 산업재해로 바라보지 않는 문제도 있고,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여성노동자 산업재해 문제는 지금보다 더 드러나야 한다. 이를 위한 모범적인 활동 사례로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난해 진행했던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지원사업 대상은 “사회적 시선, 고정관념 때문에 자신이 겪는 건강 문제가 ‘산업재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홀로 견디는 청년 여성”이다. 한정적인 신청 기간에도 400명이 신청했다.
여성노동자가 아프고 다치고 사망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게 만드는 사회는 성차별을 방치하는 사회다. 산업재해 원인에 ‘남성이 기본형인 성차별한 노동환경’도 있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여성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한 균형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여성노동자의 아픔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그 원인인 노동환경이 계속 지적되고 시정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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