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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Apr 26. 2023

저의 선물은 생리대입니다

화장지가 없는 직장을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비용이 부담된다고 어느 날 갑자기 화장실과 업무공간의 화장지를 없앤다면 아마 대부분의 노동자는 황당할 것이다.


지난해 연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트위터 본사는 건물관리 업체와 계약을 중단했다. 임금인상을 위해 건물관리 업체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자 비용절감을 이유로 계약을 중단한 것이다. 그 이후 청소가 되지 않아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화장실의 화장지가 바닥이 나서 직원들은 개인용 화장지를 각자 집에서 가져와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 사실은 언론을 통해 보도돼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그렇다면 생리대가 없는 직장은 어떤가. 생리대도 화장지와 마찬가지처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이다. 생리하는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고 사회활동을 하고 경제활동 하는 데 필수로 필요한 물품이다. 그래서 일부 공공기관과 학교 등에선 생리대를 비치한다. 서울시의 경우 공공 생리대 지원 사업을 통해 도서관 등 298기관에 생리대를 비치했다. 이 정책으로 유엔 공공행정상을 받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도 생리대 비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노동자의 위생과 건강,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뿐더러 회사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 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이슈가 된 글이 있다.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서로 자랑하는 글이다. ‘커피믹스를 마실 때마다 이름을 적는다’,‘수정테이프를 다 쓴 것을 보여줘야 리필 해준다’,‘정수기 물 많이 마신다고 뭐라 한다’,‘물·커피값을 걷는다’ 등 복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기본적인 물품에 불과한 용품들을 제공하지 않는 회사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회사의 이러한 무신경은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능력을 저해하고 일상을 힘들게 만든다. 반면 회사의 구성원과 방문객을 위한 생리대 비치는 사람을 존중하는 회사라는 인식을 줄 것이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생리대가 있다. 회사가 입주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건물 화장실에도 생리대가 있다. 언제든 편리하게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갑자기 생리가 시작돼도 안심이 된다. 비치된 생리대를 사용할 때면 생리를 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생리통으로 아파하는 모습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생리가 나의 커리어에 불이익을 주는 나쁜 단점이 아니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특이한 용품이 아니라 일상용품으로서 회사에 생리대가 존재하니 말이다.


한편 회사가 생리대를 비치하는 결정을 하는 데 망설여지는 걸림돌 중 하나가 비용 문제다. 생리대 가격이 높으니까 회사에서 공용 물품으로 생리대를 구비해두기 어려운 점이 있다.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생리대는 2004년부터 기초생활필수품으로서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이다. 그러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만 한정된다는 점과 독과점 구조 때문에 생리대는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 중이다. 생리대가 합리적인 가격이 된다면 화장지처럼 생리대를 비치해 두는 회사가 늘 것이다.


친구의 사무실이 이사할 예정이다. 이사 선물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생각이 생리대까지 왔다. 생리대는 원수에게도 준다는 말이 있다. 원수에게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줄 정도로 생리대는 생리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생리대가 화장지처럼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일상적으로 흔하게 보는 물품이 되길 바란다. 이제부터 내가 가는 회사 개소식과 사무실 이사 선물은 생리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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