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에서는 주로 기사를 읽는다. 구독 중인 뉴스레터에서 추천하는 기사도 읽고, <매일노동뉴스>도 보고, 몇 개 언론사의 메인기사도 읽는다. 이번 달에 읽은 기사 중에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키워드는 각각 성희롱과 임신·출산·육아기 노동자 차별이다.
두 기사 중 하나는 ‘사귀라’며 분위기를 몰아가는 언동을 성희롱으로 인정한 판결에 관한 기사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누구랑 만나 보라’고 몰아가는 일들은 회사에서도 적지 않게 벌어진다. 기사 속 노동자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상사가 신입직원에게 신입직원보다 20살 많은 다른 직원이랑 만나 보라고 몰아갔다. 거절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그 친구 돈이 많다’며 계속 만남을 종용했다. 회사에서는 분리 조치와 가해자 징계처분을 내렸다.
피해자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는 가해자의 언동을 성희롱이라 판단해 위자료 300만원을 선고했다. 보통의 노동자가 그러하듯 여성들도 일하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닌다. 연애하기 위해서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20살 많은 남성이어도 돈만 많으면 연애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우위관계에 있는 상사의 ‘농담’은 신입직원에게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거란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기사는 활동가로서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기사였다. A노동조합은 ‘출산휴가를 사용하고 출산 후에 노조 업무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노조간부를 전임자 파견에서 해지하고 출산 후 노조 복귀도 거부했다. 진정인의 업무에 문제가 있었고, 노조활동 특성상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우며, 근로기준법상 노조가 출산휴가를 부여할 의무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히려 노조가 진정인을 배려하기 위해 회사로부터 출산휴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파견해지를 시킨 것이라 주장했다.
출산휴가와 복귀를 거부당한 진정인은 인권위에 진정했고, 인권위에서는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진정은 각하했다. 하지만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결집된 단체인 노동조합의 활동에 임산부 및 육아기 여성이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출산휴가 후 복귀하겠다는 것을 거부하며 노조활동이 출산·육아와 병행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건 섣부른 단정이라는 점과, 가부장적인 노조 조직문화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차별적 관행과 문화가 여성근로자를 노조활동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노조는 ‘60여년에 이르는 노조 지부 역사상 임신부 또는 육아기 자녀를 둔 맞벌이 간부가 없었다’고 한다. 출장이 많고, 투쟁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고, 저녁 회식을 해야 하는 일이기에 육아를 하는 여성이 일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활동일까. 여성노동자에게 유해한 구조를 뜯어고쳐야 여성도,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가정을 중시하는 사람들도 노조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판결과 기사를 통해 피해자들이 싸워 낸 결과를 짧게 읽어 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지난한 과정이 있다. 피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드러내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자신의 노동권을 지켜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센터는 지난 3년간 사내 대응과 비사법적 권리구제(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산업재해 신청, 노동위원회 시정 신청 등)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를 지원했다. ‘직장내 성희롱 법률동행지원사업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그간의 성과를 공유하는 포럼도 열 예정이다. 회사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조치를 취하고, 2차 피해 예방에 선제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사내 대응 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이 도움된다. 상대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취약한 피해자가 회사 내에서부터 적절하게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서로의 용기로 서로의 일터가 조금 더 나아진다. 존중을 요구하고 선례를 만드는 노동자들로 일터는 바뀐다. 왜 피해자들이 세상까지 바꿔야 하는지 답답하지만, 여전한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에 연대와 지지의 감정을 느낀다. 진정과 소송을 해 내는 피해자가 감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무게를 공동체가 무겁게 받아들이고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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