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식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한 해 동안 잘한 일과 내년에 할 일을 고민해 종이에 적고 이야기를 나눈다. ‘올해도 수고했다’고 서로 응원하고 ‘내년에도 즐겁게 지내자’고 다짐한다. 이 모임을 하고 나야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오는 기분을 맞이한다.
올해의 다짐 열 가지에도 아이 생각은 없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20대 초부터 내 꿈은 아이 셋이었다. 복작복작하게 다섯 식구와 내 방 하나 없이 지내다 혼자 독립해 사니까 쓸쓸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온 그대로 불이 꺼진 집에 돌아갔다. 아무 영상이나 틀지 않으면 집에 아무런 목소리가 없는 저녁을 보냈다. 가족이 있는 곳이 집이고 내가 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자취방이라 생각했다. 자연스레 나중에 나도 복작복작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이 셋이라는 막연한 꿈은 한 살 한 살 나이가 먹어 가며 현실적으로 수정됐다. 20대 중후반엔 아이 둘, 후반엔 아이 하나로 줄었고, 30대가 되면서는 ‘내년에 생각해 보자’며 미루게 됐다. 올해도 아이 생각은 미뤘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자연스레 안 낳게 될 것 같은 어림짐작이 남았다.
낮은 출산율을 보면 안다. 이제는 예전처럼 여성이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가 아니다. 낮은 출산율에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하는 동질감마저 느낀다고 하면 이상할까. 낳고 나면 다르다고들 하지만 낳지 않은 입장에선 육아가 지금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그치면 좋겠지만,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하기도 쉽지도 않은 사회라는 게 문제다. 평생직장이 아니라 계속 이직하며 직장을 옮기는 상황에서 안정성을 느끼고 아이를 낳긴 쉽지 않다. 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변 눈치와 미안함을 감내하며 출산휴가 쓰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을까? 작은 사업장이거나 계약직이라면 더욱 어렵다. 한창 경력을 쌓아야 할 나이라 생각하기에 계속 출산을 미루게 된다.
낳고 난 다음에도 문제다. 직장 다니는 엄마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야근은 어떡할 것이며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나. 남자는 육아에 참여만 해도 칭찬받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엄마가 달려가기 마련이다. 전국보육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여성이 취업한 경우에도 자녀양육과 가사분담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가량 많다. 여기에 남성의 임금이 평균적으로 더 높은 상황이 합쳐지니 사람들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엄마가 일을 그만두는 거’라 조언한다. 앞선 실태조사에서 ‘자녀 출산과 양육을 위해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 가까웠다(48.8%). 반면 아버지가 그만둔 비율은 0.8%였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는 엄마가 버는 돈은 그대로 베이비시터 월급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이력서가 계속 채워지는 거에 만족하라고 조언한다. 아니면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라고 사람들은 조언한다. 가정이든 친족이든 시장이든 육아와 가사는 계속해서 여성의 몫으로 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직장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싶지 않은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지금처럼 사는 거다.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며 사는 지금 일상이 소중하기 때문에 포기할 게 많은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월 100만원씩 부모급여를 지급하고 주택청약 가점도 주고 신생아 특례대출도 해 준다고 하지만 이것 때문에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다. 나의 경제권과 미래소득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으려던 사람들과 낳은 사람들에게 도움은 되겠지만 나와 같은 상황과 생각인 사람들에게도 유효할진 모르겠다. 하긴, 한 구청에서는 ‘묵묵히 근무한 다른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육아휴직을 포함해 휴직을 쓴 무보직 6급 직원에게 팀장 보직 부여를 제한한다는데 뭘 바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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