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A의 마지막 출근일이 결정됐다. A는 위로할 일이라 했지만, 나는 축하 케이크를 사오겠다고 했다. 다시 취업해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 때까지는 매일 불안하고 막막하겠지만, 그래도 A의 퇴직은 본인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상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이니 하루 정도는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고 미래를 축하하는 날로 함께 보내고 싶다.
A가 의원면직(공무원 자진 퇴직)을 결정할 때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서는 ‘더 노력해 봐’라고 하고, 본인은 ‘후회할까 봐’ 망설였다. 공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새로 취업할 때 도움이 될지 하는 걱정, 새로 취업할 곳이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이면 어떡하냐는 불안감, 공무원을 그만 두며 놓치게 된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쏟았던 시간과 돈과 노력도 아른거렸을 것이다. 복잡한 심경 속에 어느날 A는 울었고, 그전까지 퇴사를 말리던 가족들은 놀라서 “걱정 말고 그만 두라”고 안아 줬다. 다음날 A는 면직을 신청했다.
담당 업무는 계속 바뀌어서 매번 새로 적응해야 한다. 꿀직장이라는 인식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야근과 주말 근무가 줄을 잇는다.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행사가 생기면 비상근무에 동원된다. 퇴사하는 또래들이 많아지니 일이 더 몰린다. 책임지라는 일은 많은데 보상은 따라오지 않는다. 급여도 낮고 연금도 박살 났다. 저연차 공무원은 자연히 ‘다른 일을 해도 이것보단 많이 받는다’ ‘여기에 오래 있을수록 이직은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지난해에만 신규임용 공무원(입직 후 5년 이하 공무원) 중 1만3천566명(국회입법조사처, 2024)이 퇴직했다. 입법조사처는 ‘낮은 보수 및 연금 불안’ ‘경직된 공직문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꼽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향의 이유에 모든 연령·경력·직급이 ‘낮은 보수’를 압도적 1순위로 꼽았다. 낮은 보수를 지목한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재직기간이 짧을수록, 직급이 낮을수록 높아졌다.
퇴사의 원인은 떠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 보상이 없으면서 변하지도 않는 직장에 있다. 퇴사를 막겠다고 ‘책임 의식 없는 요즘 애들’이라고 가스라이팅해도 소용없다. 보상 없는 헌신을 하는 사람을 일반적인 노동자상으로 가정해선 안 된다. 노력에 따른 보상도 없고 변하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들면 사람들은 보통 둘 중 하나를 택한다. 떠나거나 조용한 퇴사(실제로 퇴사를 하지 않지만, 퇴사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가진 상태. 정해진 업무만 하는 상태를 말함)를 하거나. 돌아오는 보상이 없는 데도 노력하는 사람이 특수한 거다.
작년 이맘때 한 지자체에서 진행한 나무 심기 캠페인이 논란이었다.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새내기 공무원의 업무 적응력을 높이고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 새내기 공무원 시보 해제를 기념하는 나무 심기 행사를 열었다. 내가 심은 나무를 보며 애착심을 가지고 퇴직하지 말라는 의도로 읽힌다. 정작 필요한 개선은 갈등과 예산을 조율하기 어렵다고 외면하고 한 번의 캠페인으로 때우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러니깐 퇴사하지”란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 금요일 A는 컴퓨터 자격증 교재를 샀다. ‘쉬운 길만 가려는 거 아니냐’ ‘다들 이렇게 일하는 거 아니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새 청년들 끈기 없다고 하던데’ ‘여자한테 이만한 직장이 없다’는 말들 속에서 ‘퇴사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라며 본인의 잘못을 찾았던 A. 하지만 옆에서 본 A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직장이 나로 동치 되는 삶만이 정답인 건 아니다. 삶의 방식과 경로는 다양하다. 본인에게 더 맞는 길로 떠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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