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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현 Feb 20. 2023

끝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매일노동뉴스 기고

2020년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첫 상담은 내일배움카드에 대한 문의였다. 2020년 마지막 상담은 부당해고와 관련한 것이었다. 취업 준비로 시작해 해고와 계약만료로 끝나는 한 해였다. 연말이 되니 “회사에서 ‘12월31일로 계약이 만료되니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는 상담이 줄이어 들어왔다. “계약이 만료되는데 어떻게 하냐” “계약이 만료되는데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하냐”는 질문들이었다. 노조를 만든 뒤 집단해고를 당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에서도 겨울은 실업자와 비정규 노동자에게 유독 춥다.



이처럼 2020년은 많은 사람에게 힘든 한 해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무급휴직을 당했고, 생계가 어려워졌다. 14년 일한 청주방송에서 해고당했던 고 이재학 PD, 주민 갑질을 당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연이은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혹한 속에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고 속헹(Sokkheng) 이주노동자, 출근 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산재노동자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산재유가족들의 단식, 성폭력을 포함해 여성의 일터 안전을 위협하는 소식들….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체념감이 드는 일들이 계속됐다.



성소수자 노동자에게도, 청소년 노동자에게도, 이주노동자에게도 가혹한 한 해였던 건 마찬가지다. 관악구노동복지센터는 이들과 함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방송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업조차 어려운 현실, 노동자라는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중고를 겪는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로 취업이 어려워졌을뿐더러 미래마저 막막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취업이 더 어려울 거라 예상된다. 더욱더 좁아진 취업문을 두고, 지난해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과 올해 졸업하며 취업에 나선 사람이 경쟁해야 한다. 확진자 동선 공개로 인해 아웃팅되고, 그러한 우려로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진 문제, 고용허가제 때문에 사업장을 못 옮기는 문제, 코로나19로 본국에 가기 어렵거나 재입국이 어려워진 문제도 심각하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의 가사처럼, 끝이 보이지 않지만 하루는 또다시 돌아오고 삶은 계속된다. 함께 손을 잡으면 미래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불평등하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지방직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고, 해직자·실직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졌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부족함은 있지만 주 52시간제, 공휴일의 유급휴일 적용 사업장도 확대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더디게나마 세상은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센터에서 일한 지 2년 차였던 2020년은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한 해였다. 정부 정책에 따라 센터로 접수되는 상담 양도 내용도 바뀌었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을 땐 상담이 주춤했고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다시 악화했을 땐 무급휴직·해고 상담이 늘었다.



2021년 새해에도 계속될 하루하루는, 일하는 시민들의 일상이 보다 나아지길 바란다. 센터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는 일이 줄면 좋겠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한 363일 근로계약,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한 주 14시간30분 근로계약,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기 위한 1년11개월 근로계약을 한 노동자들을 만나면 현실을 반영한 제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런 계약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서명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만들고 가입하기 어려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와닿는 정책과 복지와 노동운동이 되기 바란다. 일하는 우리들의 일상이 보다 평온해지길 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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