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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 Nov 17. 2024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구

고마운 마음은 고마운 마음에서 나온다

며칠 전 크게 아팠다. 그전부터 전조증상이 있기는 했지만 맡은 일(아무도 읽지 않을 책자지만)을 기한내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좀처럼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출근 전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상령이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제발 오늘 회사에 못 간다고 말하고 병원에 가자. 지금 병원에 안 가면 나는 집을 나가버릴 거야."

내게 상령이 집을 나가는 것만큼 무서운 건 없다.

"알겠어. 말 들을게..."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긴 터널과도 같았다. 과연, 끝이 있을까...?

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내 팔에 링거가 꽂혀 있었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상령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족들이 내 곁에 있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내게 간호사가 더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지금 나가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근처 24시 국밥집에 앉아 있었다. 상령이 내게 더 먹으라고 권유했고 나는 못 먹겠다고 수저를 놓았다. 내가 먹지 않는 밥을 대신 먹어주는 상령. 하지만 그 순간엔 그 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다음날 회사를 나가고 점심시간즈음 되니 정신이 차려졌다. 사무실의 대화소리가 귀에서 윙윙 거린다. 언어에 집중할 수 없었던 건 어제 긴 시간 맞고 있었던 링거 때문이었을까?

사실 요 근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힘들었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힘들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그 마음조차 전할 수 없었다. 나는 바보니까...




"저는 감정 때문에 망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직장 동료는 허겁지겁 나가면서 말한다.

"아니요, 그 감정으로 만든 영상과 글과 사진이 주임님을 살릴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주시나요?

전 지금 저의 그 무엇도 사랑하고 있지 않는데,

내가 좋아하던 나의 이 감정마저 나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처음 회사에 들어오고 한 민원인이 퇴근 5분 전에 전화를 걸어온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우리 회사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오고 싶은데 어떻게 가는지, 버스는 몇 번을 타면 되는지, 거기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몇 시가 막차인지 등의 우리에겐 어렵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사실 그 전화를 받고 놀랐다. 이렇게 쉬운 걸 몰라서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다니. 도움을 주고 싶어서 검색을 열심히 해서 상세히 알려주고 소소한 이야기를 듣다 전화를 끊으니 40분이 흘러 있었다.

그 할아버지의 인사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것 하나 찾기도 힘든데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마워요."

내심 퇴근이 늦어져 싫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는데, 과연 그 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가끔 내 말과 글이 가식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작 중요한 태도가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니까.

내가 하는 말이 정말 나일까? 내가 적는 글이 정말 나일까?

나를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나의 입이 닫힌다.

자신이 없다. 말을 할 자신이.

나는 과연 진짜일까?




이번주 레슨생이 다리를 절둑거리며 레슨실에 들어왔다. 축구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3교대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단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는 사람이 그 다리로 레슨을 받으러 오다니. 내 생각 밖에 못하는 이기적인 나인데, 이런 레슨생을 만나다니.





내가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살린다.




마음이 힘든 내게 매일 점심을 예쁘게 차려주는 상령이 나를 살리고

동그란 눈으로 애엥 거리며 쳐다보는 고양이들이 나를 살리고

힘내라고 밥을 사주며 내 말을 들어주는 부모가 나를 살리고

무심한 듯 하지만 친절히 말을 걸어주는 동료들이 나를 살리고

나를 믿고 찾아와 주는 제자들이 나를 살리고

나의 양면성을 알면서도 웃으며 대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나를 살린다.





사람이 힘든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힘든 거야.

내 앞의 얼굴들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는 내 마음이 지금을 놓치고 있다구.



웃어주는 얼굴들.

건네주는 말들.

고마운 마음들.

잊지 말자.




친구와 통화를 하며 그린 그림을 상령에게 보여주니 말한다.

"그림 너무 좋다! 내일 내 방에 걸어놓을 거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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