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내가 꼽는 한국사의 한 장면
프라하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프라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무료로 진행했던 거리 투어에 참여하며 시내를 둘러보았다. 10년 전의 여행이었기에 들었던 대부분의 내용은 휘발되었지만 딱 하나 기억에 남는 낱말이 있다. -‘고딕 양식’. 고딕 양식은 중세 시대에 유행했던 건축 풍을 말하는데 특히 교회와 관련이 깊다. 당시의 교회는 지붕을 더 높고 뾰족하게 지어 첨탑으로 마무리하였다. 이는 신과 좀 더 가깝게 닿고자 했던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이탈리아나 터키를 여행할 때도 비슷한 삶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기독교인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땅 밑에 그들의 세계를 구축해 놓았던 ‘지하도시’가 있었다. 햇빛이라고는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굴을 팠고 가축을 키울 공간을, 먹고 자는 생활 공간을, 아이들이 모여 배움을 이어가는 공간을 만들었다. 땅을 잘라 지하도시의 단면을 본다면 개미굴과 모양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에서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다. 신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 우리는 그 시기를 근대로 부른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세상살이는 고달프다. 좋은 날도 있지만 내 기대와 소망에 좌절되는 날 또한 많다. 중세적 인간은 자기에게 찾아온 좌절을 신을 통해 이겨내려 할 것이고 근대적인 인간은 사람에게서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해결의 방점을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기반에는 사고의 확장이 있다.
한국 문학사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도 중세와 근대의 차이점을 살펴볼 수 있다. 중세 소설의 세계관은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땅의 세계가 있고 이를 지배하는 하늘의 세계가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생인 하늘에서 잘못된 인연을 맺고 하늘에서부터 반목한다. 이 관계는 현생인 땅의 세계에서도 이어진다. 지상에서의 모든 갈등은 하늘의 세계에서의 일들이 다시 재현되는 것일 뿐이다. 갈등의 해결도 철저하게 하늘에 의지한다. 땅의 세계에서 갈등을 겪던 인물들은 자신의 전생을 깨닫고 천상으로 올라간다. 하늘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전생의 얽히고설킨 악연을 풀면서 현생의 갈등을 해소한다. 하늘의 일이 먼저 풀려야 땅의 일도 해결되는 식이기에 땅에서 어떤 인생을 살든 그 인생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사람은 그저 하늘의 뜻에 순응할 뿐이다.
이러한 중세 소설이 근대로 넘어가면서 세계관은 일원론적으로 통일된다. 천상의 세계는 사라지고 땅의 세계만 남는다. 인간들도 전생의 인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갈등이 생겨난다. 개인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택한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갈등은 해결되기도 하고 고조되기도 한다. 인간이 지닌 힘을 신뢰하고 인간 자신이 삶의 주체로 서는 것.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후기의 사람들이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에는 ‘문자’의 발명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많은 양의 한자는 생업을 이어가느라 바쁜 일반 백성들에게는 버거운 문자였다. 제한된 문자로 기록된 자료들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공유되어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재료가 된다. 그래서 세종대왕의 주도로 ‘훈민정음’이 창제될 때, 최만리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상소문을 올리며 백성들을 위한 쉬운 글자가 탄생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훈민정음 창제를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 세종은 유생들의 반대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1446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백성들의 목소리가 글자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열렸다. 새 글자의 사용과 함께 서민층의 문학이 대두되었다. 운문에서는 사설시조가 산문에서는 국문소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소설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궁중에서 일어난 가공의 이야기를 다루던 초기 소설과는 달리 후기에는 오늘날의 ‘대중가요’ 격인 판소리 사설을 국문으로 옮기면서 소설은 활발하게 유통되었다.
같이 읽고 의견을 나누며 사람들의 의식은 더불어 성장하고, 시각은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된다. 의견을 나누는 공론의 장에서 사람들은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유하며 연대한다. 홍수나 가뭄으로 자연재해에 시달릴 때, 과거에는 왕이 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다. 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서 인간은 이모작이라는 농업 기술을 개발하여 일 년에 한 번 짓던 농사의 횟수를 두 번으로 늘린다.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를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넓히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문학이라는 작품을 통해 표출하기 시작한다. 용왕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던 자라대신 지배층을 골려 주는 토끼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대두되고 농민들의 계층이 분화되면서 부농과 빈농이 갈등했던 사회 분위기가 ‘흥부전’에 반영된다. 관리와 지배층의 횡포에 눌려왔던 분노마저도 양반들이 마련해준 잔치를 통해 풀 수 있었던 일반 백성들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변화는 한글의 창제로 가능한 것이었다. 한글이 만들어지자 민중의 자의식은 싹틀 수 있고 민중의 개인적 자아는 사회적으로 각성할 수 있었다. 당시의 한글 소설을 통해서도 증명되듯 사회적으로 각성한 개인들은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이르자 조선 후기는 비로소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사고를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정보 공유의 확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것은 근현대, 현대 속에서도 맥이 이어진다. 정부에 언론이 장악되어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타지역에서는 알 수 없었던 1980년 5월과는 달리, 2024년 12월에는 하늘에 헬기가 나타나고 군인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장면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휴대폰을 지닌 개인이 1인 방송국이 되어 탱크 앞에 앉아 있는 시민들을 중계하고 담을 뛰어넘어 국회로 들어가는 의원의 뒷모습을 중계한다. 공유되는 정보에 의해 사람들은 모이고 하나가 되어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 나간다.
한국사에서 고대, 중세, 근대를 시기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의견이 일치하는 시대도 있다. 현대는 1945년 광복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독립된 국가로서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한국은 현대로 진입한다. 제국주의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광복을 맞이한 배경에는 의병과 독립군들이 있다. 사회적 자아로서 각성한 개인들의 행동들이 모여 한국은 외세에 뺏긴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고, 나라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흩어져 있던 개인들은 모여 금을 꺼내 들고 촛불을 들고나왔다. 나라가 어두울 때마다 집에서 가장 밝은 것들을 들고나온다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24년 현재, 응원봉을 들고 모인다.
일은 아직 진행 중이며 결말은 어떻게 맺어질지 모르는 24년의 끝자락이다. 바람이 차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개인이 모여 사회의 큰 줄기를 만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일을 풀어나갈 것이다. 그 속도가 비록 더딜지언정.
70대 아버지와 40대, 30대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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