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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이자 봄의 시작인 순간을 맞이하며(by. 흔희

#27.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by 땡비

추위에 유난히 취약한지라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들어가듯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랫감을 보니 외출복이 별로 없다. 2월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추위는 누그러졌고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날 때쯤 다시 보자며 헤어졌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본다. 부산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언양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자기 동네로 오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곳과 언양의 중간쯤에 사는 친구를 차에 태우고 그곳으로 향한다. 풋내나던 17살에 처음 만난 우리는 6년 전쯤부터 마흔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스페인에 가자고 곗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025년 2월. 오늘, 마흔이 되어 우리는 처음 만났다.


스페인으로 향했던 우리의 계획에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발리로 1차 변경 사항이 있었다. 8월에 발리를 가기 위해서는 지금쯤 비행기 표를 예약해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 이야기를 꺼내니 한 친구가 미안하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던 업을 접고 작년부터 다시 대학생이 되어 만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였다. 그동안 일을 하며 돈을 모아두었지만, 아르바이트와 근로 장학생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해외를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셋 중의 하나는 허덕거렸다. 두 명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하나는 여전히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고 하나가 대학생이 되자 곧 둘은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두 명이 직장인이 되었을 땐, 하나가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며 호주로 훌쩍 떠나버렸고 직업을 가진 세 명이 비로소 한국에 다 같이 모였을 땐, 하나는 육아에 허덕거리며 30대를 보냈다. 아이는 자랐고 육아가 비로소 좀 우아해진다고 느낄 무렵, 비교적 셋은 안정적인 상태로 마흔을 맞이하는 듯 보였지만 39살이 되던 해, 하나는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배움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다리던 스페인 여행이 무산되던 말이 나오자, 우스갯소리로 누군가가 말을 뱉었다.

“야, 우리는 세 명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거가!”


20대에는 시간이 있었지만 돈이 없었고, 30대에는 돈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40대가 되면 시간도 돈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의 삶인가 보다. 아니다. 돌이켜 보면 다 변명이다. 20년의 세월 속에 세 명의 타이밍이 다 들어맞는 순간이 한시도 없었을까. 문제는 시간도 돈도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묶어두었다. 무언가를 돌파하고 넓은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우리의 세상은 좁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해외여행 하나 무산되었다고 무슨 이런 비관론에 허덕이나 싶겠지만. 해외여행은 상징적인 것일 뿐이다.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으로 방향을 돌려 보는 것. 전혀 가보지 않은 문을 통과해 보려는 시도.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려는 용기였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했고 스스로 삶에 한계를 긋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간다면 셋이 함께 떠나볼 수 있었던 어떤 순간으로 가보고 싶다. 아르바이트하며 벌었던 돈을 술이나 커피에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모아서 바다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도 있었을 20대의 어느 순간. 호주로 떠난다는 너를 붙잡고 가지마라고 말릴 것이 아니라 남아 있던 우리가 바다를 건너 너를 보고 돌아올 수 있었던 그 순간. 그런 순간들로 돌아가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려던 관성을 보란 듯이 끊어내고 싶다. 우리에게 사실 타이밍은 몇 번이나 있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우리는 시간이나 돈이 아까웠을 뿐이다.


선형적으로 시간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원형적으로 시간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을 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과거-현재-미래의 틀에 삶을 가두어 버린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 되고 돌이킬 수 없으며 삶은 특정한 시간대에 갇힌다. 반면에 원형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시간은 절기마다 순환한다. 계절은 돌고 돈다.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다. 한 시점이 끝이 될 수도 있고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삶은 흘러가면 끝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흐르는 삶 속에서도 일정하게 반복되는 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그리워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순화되는 나의 행동 양태에 집중하고자 한다. 굳이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타성에 젖어 익숙하게 돌아가는 내 관점에 조금의 변화를 준다면 삶은 변주되고 더 다채로울 것이다. 대충, 마흔을 맞이하여 좀 색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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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아버지와 40대, 30대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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