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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by. 못골)

#27.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by 땡비

며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찾아본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언제일까? 돌아가서 다시 삶을 진행하여 현재의 반복이 되어도 돌아가고 싶을까?
내 의지대로 잘못된 인생을 고쳐서 다시 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려 할까? 돌아가서 다시 경험하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언제일까? 입학하는 날, 아이가 태어나는 날, 취업, 결혼, 사랑이 시작되던 날, 헤어지던 날. 떠오르는 그 순간은 있지만 그냥 단편적인 사건이다.


그런 특별한 순간이 우리들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일까? 인생은 고쳐서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결혼식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친한 친구와 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이 술을 한잔할 때 어머니가 “오늘 같은 날 아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 속에는 어머니의 많은 한과 소망이 섞여 있는 깊은 내면의 말씀이었다.


메리놀 병원 앞에서 장모와 걸어갈 때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낯익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헤어진 그녀였다. 인사를 하며 어떻게 지냈느냐는 반가움의 인사 정도는 하고 의례적인 말이라도 안부를 전하며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히 스쳐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하는 행동이었다. 그녀와 처음 만난 순간이 돌아가고 싶은 날일까?


방학 때 친구가 공사하는 건설 현장에서 며칠 막노동을 하고 왔다. 그리고 만난 그녀에게서 “왜 연락이 없었느냐? 혹시 날 속이고 있었냐?”는 말에 화가 치밀어 손이 올라갔다. 스치듯 그녀의 뺨을 빗맞고 입술이 터져 손수건으로 닦아주니 싫다고 그냥 가버린다.


사과해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동, 아마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내 마음속에는 이미 헤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어 그런 결심이 행동으로 나왔을 것이다. 잘못된 판단이다. 왜 애틋하게 늘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남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어느 날 헤어지자고 먼저 제의하고 가버렸을 때 나는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 아픈 지난날에 대한 앙갚음이었을까?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억하심정이었을까? 내가 아팠던 경우와는 다르게 그녀는 쉽게 잊을 것이다. 그녀가 배우자로 날 선택하기에는 얼마나 감수해야 할 많은 장애가 있었나? 특히 가난은 그녀도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며칠을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돌아오면서 스스로 마음을 정리해 버렸다. 다시는 찾지 말자고. 그런 나를 보고 함께 자취하는 친구가 “너 참 무서운 놈이구나!” 하며 웃었다. 그 친구는 싫다고 하는 여성에게 매달려 계속 만나기를 간청하는 중이었다. 그때 그녀는 왜 늘 나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였는지 심중이 이해되지 않았다.


2015년에 퇴직을 했다. 35년 전 그녀가 근무하는 치과에서 덧씌운 이를 다시 치료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치과를 찾아가는 길에 얼핏 생각이 났다. 나도, 그녀도 서로를 버려 버린 것이라고…. 늘 짐처럼 마음에 걸리던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서로 가난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길로 감히 걸어 들어가기에는 각각 처한 현실이 너무 암담하고 무서워 서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미련 없이 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정리하였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으로 그때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만나서 그녀에게 지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말 때문이다. 갑자기 왜 맞았는지도 모르는 채, 왜 헤어졌는지 간청도 애원도 해명도 없이 실없이 만났던 사람처럼 우리는 스쳐 가버렸다. 그녀는 없었던 일로 잊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현실로 와서 뒤돌아본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많은 과정속에서 갖추어진 자신만의 색깔이다. 수채화 색이 층층이 쌓이면서 미묘하고 독특한 색을 나타내듯, 켜켜이 새겨진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젊을 때는 그 색깔에 맞는 상대를 찾는다. 스스로는 왜 저 사람이 좋은지 모르면서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의 유형이 그런 기준으로 선택한 사람이다.


그래서 다시 다른 사람을 사귀어도 지금의 아내일 것이다. 많은 분석과 탐색 뒤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저절로 갖추어진 내 이성과 감성의 작용 결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이혼은 나의 지난 잘못을 고쳐 다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반성의 과정이 아니라, 나의 잘못을 받아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골라 그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성격 때문에 큰 아픔을 겪어도 그 성격을 스스로 고쳐 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지금의 아내와 처음 만난 그때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일까? 아내는 동생이 여럿 있어 결혼이 급했고 나는 느긋했다. “맏이니 결혼 준비는 되어있겠네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라고 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배우자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하면서 그 배우자가 나일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취업도, 재산도, 기술도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나는 누구를 대상으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떻게 결혼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따름이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 또래 사람들에게 '언제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 시대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힘겹게 살아온 시절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산다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진을 함께하는 선배가 술을 한 잔하며 어머니 돌아가신 날, 침례병원 장례식장에 문상을 와서 “와!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고 웃으며 옛날 이야기를 한다. 어디 가난뿐이겠는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드러내지 않은 일들이….


당신에게도 가슴 아픈 많은 이야기가 층층이 재어져 있다.
그냥 마음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바라보며 노력해 왔다면 자신의 삶 가운데 가장 나은 시기는 지금이 아닐까? 노력했기에 그래도 암담했던 과거보다는 요만큼 조금 더 나은 지금의 상태로 되어 있다.


칠십을 넘겼는데도 아직 알 수가 없다. 남아있는 길지 않은 내 인생조차도 앞으로 삶이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변화가 다시 와 닥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은 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루어진 살아온 결과이다.


시장 다녀오는 아내를 우연히 장산 전철 역 입구에서 만난다. 당신의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인다. 나도 그런 표정일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찰나처럼 흘러간다.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이런 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우리에게 없다. 이제 그 순간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 가며 살아갈 뿐이다.



70대 아버지와 40대, 30대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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