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세대갈등과 생존전략
올여름 내 눈은 경기장 안팎에서 움직이는 안세영의 셔틀콕을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대담한 공격과 빠른 수비 전환, 상대 선수에 대한 존중까지, 명경기를 보여주며 안세영은 마침내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안세영은 지금 경기장 밖에서도 7년 동안 쌓아온 한을 밑천 삼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기쁨과 환호에 젖어 있어야 할 금메달리스트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분노가 금메달의 원동력’이라 했다. 안세영은 7년간 대표팀 막내로서 선배들의 끊어진 라켓줄 수선, 방 청소, 빨래 등 잡일을 도맡았다. 협회 임원들이 비즈니스석을 타는 동안에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심각한 부상에도 협회는 경기 출전을 강요했고 단식/복식 구분 없이 강도 높게 돌리기만 하는 훈련으로 체계가 없었다. 단체 후원을 위해 개인 후원이 막힌 데다 협회를 통해서만 국가대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시대적인 규정 때문에 안세영은 국제대회에서 8억 원이 넘는 상금을 타며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연봉은 6천만 원이라는 상한선에 막혀있다. 이에 비해 세계 13위인 인도 선수 푸살라 신두는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상금은 7000만 원대이지만 광고와 후원으로 97억 원을 벌어들이며 개인 트레이너 고용 등으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보면 안세영의 상대적 박탈감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선배이자 큰 어른인 28년 전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은 오히려 안세영을 비난했다. 이 대목에서 안세영의 폭로전은 점점 개인의 일이 아닌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이 느껴졌다. 방수현의 반응은 젊은 세대가 불합리함에 문제를 제기할 때 괘씸하다며 비난하는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방수현은 안세영에게 “모든 선수가 그런 환경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뛴다”며 “나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들어가 그 시간을 다 겪었다. 대표팀을 누가 등 떠밀어서 들어간 게 아니지 않냐”라고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 성과가 올림픽 전에 실시한 해병대 캠프 덕분"이라고 말한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여태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지만 컴플레인은 한 번도 없었다”며 안세영이 특별 대우를 바라는 것처럼 몰고 갔다. 안세영의 타이밍과 방법이 아쉬웠다며 '왜 좋은 날에 남들 보기 부끄럽게 찬물을 끼얹었냐'는 비난 여론도 많았다.
우리는 소수의 안세영과 다수의 방수현을 만나며 살아간다. 젊은 세대가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 반기를 들면 기성세대는 유별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내부 고발자라며 비난한다. 단체를 위해 희생하라며 막은 개인 후원 금지 조항과 연봉 상한선에 대해서 안세영이 문제를 제기하자 ‘어린것이 돈밖에 모른다’며 여론이 싸늘해진 적이 있다. 우리 사회는 불합리함을 주장하려면 자기 것은 다 포기하는 순교자형 영웅이기를 바란다. 실력이 뛰어나도 건방지다 욕을 먹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발언에 힘이 실리지 않은 채 묻힌다. 부조리함을 깨려면 실력을 갖추어 주목을 받았을 때 자신의 이익마저 내려놓고 공익만을 위해서 움직여야 최소한의 지지라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엄격한 잣대로 심판받기에 안세영이 세상에 털어놓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지 우리 모두 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겁나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부조리함에 더는 못 참겠어서 버거운 게 우리의 인생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말처럼 우리는 세 가지 질문에 놓인다. 첫 번째는 '절을 떠날 것인가?'이다. 문제는 절을 떠나봤자 기원전 동굴 벽화에도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라고 그려진 것처럼 세대 갈등은 인간 본능에 가깝다. 어느 절에나 종류의 차이일 뿐 세대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절을 가본다 한들 세대갈등을 피할수는 없다.
두 번째는 '절을 바꿔버릴 것인가?'이다. 용기와 두려움이 동시에 솟구쳐 오르는 질문이다. 절을 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없는 우리가 어떻게 바꾸니. 그냥 살아야지. 아니면 너가 바꿀 수 있는 위치에 가서 바꿔라. "고 하는 경우가 많다. 수없이 들었을 이 말들을 양분 삼아 안세영이 세계 1등이 되었을 텐데 정상의 자리에 앉은 그녀조차도 변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모두가 안세영처럼 세계 1등이 되거나 한정된 리더의 자리에 가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지는 못한다. 혼자라면 절망스러워 다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여럿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안세영의 용기에 세계 유수의 선수들과 정치권에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안세영은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은 선수 1위를 기록하며 그녀의 행보를 지지하는 다수의 국민도 확보했다. 같이 바꿔나갈 사람과 함께 지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져본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이다.
세 번째는 '입 닫고 절에 있을 것인가?'이다. 조직을 바꿀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대다수 사람 가운데 중 하나가 된다면 그냥 순응하며 살게 된다.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를 떠올리며 합리화하고 문제를 회피해 버린다. 자신은 나서지 않으면서 안세영처럼 실력과 용기와 발언권을 모두 가진 총대를 멜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이들 대다수는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방관자들은 자신이 견뎌온 불합리함과 지난 세월을 자신의 역량으로 여기며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위계 구조를 견고하게 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고 과거의 방식이 옳다고만 하며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구태연한 어른이 되어 도태되고 고립된다. 그저 과거에 얽매여 존경을 강요하는 일찍 늙어 버린 사람들 중 하나가 될 것인가?
사실 우리는 세대갈등의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적에 충실하면 된다. 양궁협회의 성공 사례가 바로 옆에 실존해 있다. 양궁협회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메달리스트도 예외 없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정한 선발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능력이나 경제적 여건의 빈부격차 없이 모든 훈련과 선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원하여 납득할 수 있는 원칙과 결과로 운영된다.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국가대표가 되자'라는 간단하고 명쾌한 명제를 위해 운영된다. 양궁의 발전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러한 원칙을 지켜나가는 좋은 어른들이 의사결정권자로 있기에 바른 과정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걸까? 양궁협회처럼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변화의 주도권과 기득권을 이미 가진 어른들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때문에 안세영은 계속해서 외친다.
“저는 싸우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제 이야기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셨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저는 배드민턴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배드민턴밖에 모릅니다. 제가 배드민턴을 마음껏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좋은 어른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방수현으로 늙지는 말자.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당하고 부당하게 떠넘김 당했던 일들을 잊지 말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방관자는 또 다른 방수현이 되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좀먹으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내 안의 안세영이냐, 방수현이냐’로 내린 결정들이 모여 결과로 나타난다. 어린 중학생 안세영이 쉬지도 못한 채 선배의 빨래를 대신하고서 이 악물고 연습을 하여 세계 1등의 자리에 올랐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안세영은 기성세대가 되어 이를 누리려 하기보다 악습을 바꿔보자고 소리치고 어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정한 어른은 과연 누구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최소한 방수현이 되지는 않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못골 글 보러가기 : 내가 경험하는 세대 갈등 https://brunch.co.kr/@ddbee/97
-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좋은 사이 https://brunch.co.kr/@ddbee/96
-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내 안의 안세영과 방수현 https://brunch.co.kr/@ddbee/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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