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회사에서 해본 프로덕트 디자이너 성과 관리 (ft. 7년차직장인)
어느덧 커리어 전향해서 첫 프로덕트 디자이너 직장인이 된 지 6개월이 되었고, 첫 연간 성과 중간리뷰를 마쳤다. 사실 각 잡고 평가를 해서 보고한건 아니고 (그건 연말에), 중간쯤 와서 그간 해온 업적을 점검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정도였다.
의외로 여러 나라의 여러 직장에서 일하면서 성과 평가나 보고를 요구하는 회사를 다녀 본 적이 없는데 (작은 회사를 다니면 사장이 직접 지켜볼 수 있으니, 보고를 위한 일을 시키질 않는다ㅋㅋ), 생각보다 주변 디자이너 분들 중에 이맘때 즈음 2024년 중간 성과 보고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북미 쪽 회사들이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 다들 많이 들어봤을 거고... 여하튼 결론은, 이런 경험 처음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회사의 경우 프로덕트 디자이너팀을 위한 성과 측정 기준이 있다. 대략 20개 정도 되는 항목에 1-5점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데, 1점/3점/5점 기준이 상세하게 다 적혀있다. 장점은 기준이 어느 정도 주어지니 평가가 쉽다는 거고, 단점은 이 기준이 시니어랑 매니저까지 아우르는 도표라 주니어한테는 좀 힘들다는 거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무시하지는 않았다.
느낀 점 요약과 자세한 포도알은 아래에...
프로덕트 디자이너 평가 항목
전반적으로 선빵했다
그나마 자신 있게 잘한 부분: 디자인 퀄리티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칭찬받은 부분: PM과의 협업
가장 개선하고 싶은 부분: 커뮤니케이션, 더 편해지기
남은 2024 Q3, Q4 기간 목표
디자인 퀄리티, 데이터 활용, 업무 완료 (책임감),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팀워크, 전략과 혁신 등 큰 섹션에 각각 2-7개 정도 평가항목이 있다. 다만 중간 점검 때는 모든 항목을 다 점수를 제출하진 않고, 대신 항목들을 보면서 그동안 어땠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셀프점검해서 메모를 남기면, 매니저가 참고해서 중간점검 종합 메모를 남기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평가 기준치 예시가 너무 높게 잡혀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매니저의 생각은 '모든 영역에서 예상치만큼 따라오고, 종종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였다.
다만,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팀 사정으로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자꾸 지연돼서, 많은 일을 하진 않았다 보니 '아직 다양하게 업무를 해보지 않았기에, 평가하기 이른 영역이 있다. 잘할 거라 믿지만.'이라는 메모도 포함되었다. 그래도 '스스로 리서치도 하고 트레이닝이나 웨비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름대로 기여를 하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기준치 예시와 별개로 1-2점은 문제가 있고, 3점은 기대치만큼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모든 영역에서 기대치만큼 하고, 일부 영역에서 뛰어남을 보여줘서 3-4점이라는 것이다. "1-2 means you're failing, but you're not failing on anything."
다른 회사(주로 한국회사) 다닐 때랑 비교랄 하자면, 본인의 경우 처음 1-2달은 느지막하게 따라가다가 몇 개월 이후에 남들보다 월등하게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었는데 (1-2년 정도 다니면 한 5-10년 다닌 애처럼 일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그래서 이번 평가를 들었을 때 선빵했다 생각하면서도 좀 아쉬웠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점수를 높게 측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특별히 0부터 디자인한 적은 없지만, 주어진 디자인 시스템을 잘 따르고, 기존에 있는 디자인을 변형할 기회가 보일 때마다 개선을 제안했다.
다만 평가 항목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피그마 디자인 파일의 퀄리티 자체 외에도, 평소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 배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팀과 공유를 잘하는지), PM이 안 시켜도 먼저 잘 찾아서 일을 하는지, 디자인 리뷰 미팅 때 제대로 된 피드백을 주는지, 유저 리서치를 얼마나 하고 반영하는지 등이 있었다.
다행히 매니저도 내가 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태 해본 건 아니지만, 맡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잘 이끌고, 신입 치고는 기초가 잘 되어있고 툴 활용도도 좋아서 앞으로도 잘할 거라 생각한다고 평을 받았다.
최근 몇 개월동안 가장 힘들었고, 앞으로 더 개선하고 싶은 부분으로 꼽은 목표 리스트 중 하나로 PM과의 협업 방식에 더 익숙해지기를 넣었는데, 의외로 매니저는 이 부분에서 나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각 PM마다 방식이 다 다르지만, 우리 팀의 경우 매주 Discovery trio 미팅 (프로덕트 개발에 관여하는 PM, 디자이너, 개발자 삼총사가 주기적으로 만나 프로덕트 기획하는 미팅)에서 PM이 따로 미팅 전후로 문서화된 교통정리를 하지 않고 99% 미팅 시간 동안 구두로 전달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테크니컬 한 대화는 들어도 뭔 말인지 잘 모르는 순간도 많아서 혼자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정말 최초로 이 중간 점검 때 매니저에게 언급했는데, 매니저가 보기에는 내가 그 와중에도 미팅 중에 집중 잘해서 내 몫을 다 하고 있고, 오히려 현 PM이 나를 빠르게 신뢰하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미팅 전에 사전에 논의해야 할 것 같은 디자인과 질문을 미리 준비해 오고, 개발자한테 전달하는 디자인 파일과 노트를 잘 정리해 놓고,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기고, 협업에 필요한 대화가 되고, 제시간에 대응하고... 매니저 말로는 내가 들어가지 않는 다른 리더십 팀 미팅에서 PM이 나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닼ㅋㅋㅋ
듣고 보니 그렇네, PM이 기대하는 거 생각보다 별 거 없네.
오히려 매니저 말로는, 자기보다 더 PM이랑 빠르게 적응했다며 놀랍다고 했다.
그래도 매니저가 나의 고민이 이해가 됐는지, 필요하면 미팅 레코드 해도 되고, 자기도 최대한 미팅에서 나온 아젠다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PM들과 일하게 될 날이 올 거라는 말과 함께...)
위와 같은 맥락인데, 가장 개선하고 싶은 부분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업무와 팀 환경에 더 적응해서 편안해지기를 꼽았다.
커뮤니케이션이라 하면 협업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외에 디자인 리뷰 시간에 피드백 잘 주고 잘 받기, 발표 잘하기, 그리고 프로덕트에 들어가는 카피라이팅이나 설문조사 작성 등이 포함이다. 솔직히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 딸려서 좀 더 소극적인 부분도 있었다. (이 부분도 진짜 처음으로 매니저한테 고민을 털어놓았다ㅋㅋ)
솔직히 팀 멤버한테 보내는 채팅 한 마디, 발표 준비, 설문지 작성, 버튼 카피 작성 등... 남들보다 두 배는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 거 아닌데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고치는 날도 많았다. (재택이라 티가 안 나서 참 다행이다.)
입사 4개월 차에 프로덕트 부사장(VP Product, CPO와 CEO 아래)한테 발표할 일이 있었는데, 진짜 10분 정도 발표하는 건데도 거의 2주를 연습했다. (2주 내내는 아니었지만)
평가 항목에 1점 (bad) 예시로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때 감독이 필요하다"로 기재되어 있어서 매니저한테 "내가 너의 조력 없이 어떻게 VP 같은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하겠니ㅠㅠ 나 1점이니ㅠㅠ" 했는데, 매니저 말로는 누구나 리더십한테 발표할 땐 힘들다고 당연한 거라고, 너는 그때 발표도 잘했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줬다.
이 부분은 "더 적응해서 편안해지기"로 이어지는데, 계속하다 보면 적응돼서 언젠가는 속도도 좀 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디자인 리뷰 미팅... 시니어 디자이너들 사이에 껴서 의견을 제시한다는 게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더라. 매니저 본인도 처음 1년은 조용히 있었다면서,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그래도 천천히 시도해 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더 적응해서 편안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팀에 기여하기.
Q1/Q2동안 미뤄져서 못했던 프로덕트 개발 스프린트와 개발자와의 협업, UXQA 배우기.
새로 할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리서치 많이 하기.
매니저한테 모든 걸 물어보지 않고, 담당자들과 더 친해지고 직접 찾아가깈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