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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Nov 06. 2023

  25.  정말 읽기 싫은 책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로 죽음과 삶의 의미를 잔잔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라며 후배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그리고 독서 모임 회원들은 추천-투표라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을 지정도서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책과는 다르게 이 책은 읽기가 싫었다. 그 이유를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죽음이라는 주제가 처음부터 불편하기는 했다. 그걸 독서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돼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에게도 내게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염하는 , 친척들까지 다 모였다. 유리창너머로 반듯하게 누워있는 사람은 분명 아버지가 맞다. 그걸 알면서도 처음 보는 주검이라고 놀랐는지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생명이 사라진 육신을 보며 모두 숨죽인 것도 잠시 갑자기 오열하는 고모를 선두로 지하실이 울음소리로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하던 따뜻한 아랫목이 아닌 차가운 곳에서 반듯하게 몸을 편 누웠다.


 젊지는 않아도 농사일 좀 해본 짱짱했던 근육은 쪼그라져 뼈만 앙상하다. 그럴수록 가지런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장의사의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삭정이처럼 삐쩍 마른 두 다리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말해준.  


 낙상 사고가 난 후 중환자실에서만 6개월을 계셨다. 경추 3번과 4번의 신경이 눌려 예후가 안 좋다는 의사의 말대로 아버지는 점점 몸이 굳어졌다.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온몸으로 퍼지고 나중에는 폐를 멈추게 했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할 수 없이 목에 관을 삽입하는 술을 통해 목숨은 건졌지만 그 일로 아버지는 다시는 말을 못했다. 나아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다는 말에 모두 동의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나중이라는 것은 없었다.


 동생과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다. 다시 살아난 것처럼 목숨은 건졌지만 말을 못하는 것이 어떤 삶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남의 손길과 의료 기계의 도움이 있어야만 삶이 유지되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해서 욕창이 생기고 숨이 멎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중환자실은 면회를 갈 때마다 침대 주인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런 실상을 아무 말도 못한 채 목도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차라리 그들처럼 혼수상태였다면 덜 비참했을까?


 반가운 눈빛은 절망으로 변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눈을 깜박였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면 덩달아 같이 울어도 아버지의 소원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며 희망을 가장한 고문 같은 말만 했다.


 병세가 안 좋아져 투석실로 옮긴 날이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예감한 것일까? 어두웠던 얼굴이 그날따라 편안해 보였다. 수면제로  멍하던 눈은  맑았다. 울기만 하는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의 주검은 평온해 보였다. 병중에서 보낸 월이 비참하다 못해 지옥 같아서 가까스로 탈출하시고 지금은 이렇게 쉬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 같았다.


 모리는 '누워서 살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라며 사람들을 만나고 티브이에도 출연하였다. 죽기 전에는 사랑하 가족들과 이별인사를 나누는 장례식을 하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우리··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자··."

  "자네를·· 몹시·· 사랑하네."  

  "저도 사랑해요. 코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내게 아무런 작별인사를 남기지 않았다. 만약 말을 하실 수 있었다면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모리와 같은 멋진 작별인사를 남겼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나 역시 '아버지가 편안하셔서 다행이에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혹시라도 울던 고모가 지금 그게 할 소리냐고 나를 향해 혼을 내도 상관없다. 끝까지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할 자식이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며 이기적이라고 야단쳐도 어쩔 수 없다.


by  오솔길



 아직 대다수의 내 주변인들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나도 그렇겠지. 자신의 집에서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 거기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다. 아버지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말씀했을 것이다. 미치와 모리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이별장면을 따라가다가 참았던 눈물이 왈칵하며 나왔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독서 모임이 있던 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무겁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의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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