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
독서 모임에서 그 책을 선정할 것인지의 판단은 회원들의 몫이다. 추천하는 이유와 근거를 명쾌하게 발표하는 첫 발표자에 이어 읽기 편하고 무겁지 않은 책,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뒤따라 소개된다. 그런 진부한 선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후배의 PPT는 그래서 인기 만점이다. 준비한 설명이 신선해서 읽고 싶게 만든다. 어필하는 방식은 달라도 투표를 통해서만 지정 도서는 결정된다. 어떤 책이 1위에 뽑힐 것인가? 지켜보는 일은 재미있다. 나도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투표했다. 그런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니.
모두가 읽고 싶어 한다고? 나만 이상한 걸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정말 읽기 싫었다. 하지만 다음 모임을 위해 책을 펼치고, 저자 미치가 안내하는 대로 주인공 모리의 방으로 따라갔다. 책을 보는 내 뚱한 표정만은 그가 눈치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루게릭병에 걸려 꼼짝없이 누워있는 모리.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그가 힘겨워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굳어가는 몸을 받아들이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가 내 뒤를 쫓는 것도 아닌데 그만 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미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야기도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우리··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자··.”
“자네를·· 몹시·· 사랑하네.”
“저도 사랑해요. 코치.”
나도 얼른 모리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정말 훌륭하세요!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독서 토론 날. 모임 회장이었던 나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처음부터 죽음이라는 주제가 꺼림직했기에 신경을 쓰며 모임을 이끌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회원들의 열띤 토론이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자꾸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애써 부인해도 소용없었나 보다. 이유는 짐작한 그대로다. 그것은 내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돼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염하는 날, 친척들이 다 모였다. 유리창 너머로 반듯하게 누워있는 사람은 분명 아버지가 맞다. 그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반듯한 자세로 주무시듯 생전 그대로였다. 중환자실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 낯선 느낌조차 없었다. 젊지는 않아도 농사일 좀 해본 짱짱했던 근육은 쪼그라져 뼈만 앙상하고, 삭정이처럼 삐쩍 마른 두 다리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 두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으는 장의사의 손길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낙상 사고가 난 후 중환자실에서만 6개월을 계셨다. 경추 3번과 4번의 신경이 눌려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대로 아버지는 점점 몸이 굳어갔다.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온몸으로 퍼져 나중에는 폐까지 멈췄다. 숨을 쉬기 위해 목에 관 삽입 시술을 받았다. 나아지면 원래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말에 동의했지만, 그 이후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었다.
동생과 나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를 차츰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료 기계로 유지되는 삶, 욕창이나 생리현상조차 느끼지 못하는 몸, 살아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직 두 눈뿐이다. 비참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힘겨웠다. 급기야 절대 해서는 안 될 생각마저 스쳤다. 중환자실 침대의 주인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다. 차라리 그들처럼 잠자듯 누워있는 게 덜 참혹하지 않을까 싶었다.
“집에 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절망이 담긴 눈으로 깜박였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흘러도 난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희망을 가장한 거짓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병세가 안 좋아져 투석실로 옮긴 날이었다. 어두웠던 얼굴이 그날따라 편안했다. 수면제로 늘 멍하던 눈이 어느 때보다 맑았다. 울기만 하는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예감한 걸까. 그래서 주검이 되어 반듯하게 누워있는 아버지가 평온해 보였다. 병중에서 보낸 일이 기막히다 못해 지옥 같아서 가까스로 탈출하고 이렇게 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리는 “누워서 살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라며 사람들을 만나고 TV에 출연한다. 그리고 멋진 일도 계획한다. 날짜를 잡고 사람들을 불러 ‘살아있는 장례식’을 치른다. 각자 준비한 말과 글을 전하며 누구는 울고 몇몇은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이 장면은 독서 모임 회원들에게 주요한 시사점이 되어 토론을 이끌었다. 슬픔에 잠긴 기존의 장례식과는 달리,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진심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이별이라면 근사하고, 따뜻하며, 의미 있어 죽음조차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는 온갖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내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모리와 그의 가족들이 나눈 작별 인사가 무척 부러웠다.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괴로웠던 장면은 모리와 미치의 진심 어린 이별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돌아보면 왜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실컷 울었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온갖 투정과 핀잔을 쏟아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나도 충분히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는 글을 쓰며 얻은 해답이다. 그날 투석실에서 나를 한없이 바라보던 눈빛. 그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전한 진심이었다. 생각할수록 괜한 투정과 핑계로 읽기 싫다며 끊임없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시비를 거는 쪽이 유치하고 옹졸했을 뿐이다. 내 부족한 시각을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