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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29. 2024

내년에도 그냥 여기서 지낼까?

 그 교실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부장은 현관에서 서쪽 끝을 가리키며 먼저 가보라고 했다. 학교에서 교실 찾기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냐며 무조건 나섰다가 낭패를 보았다. 학교 안내도를 확인하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다시 돌아서려는 순간, 꺾어진 사이로 복도가 보였다. 이런 외진 곳의 교실이라니. 서늘하고 음침했다.   

   

 한낮인데도 컴컴했다. 4개나 되는 스위치를 다 누르고서야 칙칙한 곳이 제법 깔끔하게 보였다. 밝은 베이지 톤으로 새로 바꾼 교실 바닥과 연한 노랑의 블라인드가 한쪽 벽을 감싸고 있었다. 그제야 리모델링을 해서 새 교실이나 마찬가지라는 부장의 말이 생각났다. 이중으로 된 넓은 창이 남쪽으로 났지만 밝은 기운이라고는 없었다. 왜 음침해 보였는지 알 것 같다. 교실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 병아리 모이 주듯 야박했기 때문이다. 창가로 이사 올 화분들은 내 손길만 기다릴 텐데, 고민이 되었다.      


 거의 해마다 교실을 옮겼다. 마음에 쏙 들었던 장소도, 화장실 냄새가 고역인 자리도 있었다. 숱하게 터를 옮겨 본 경력자로 괜한 걱정을 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봄에 어울리는 연한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새로 들어올 신입생을 맞았다. 점잖은 옷차림에 밝은 미소를 연신 지으며 아이들 앞에 섰다. 분주한 학기 초 업무는 나를 몰아가며 하루하루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른 봄옷 치장은 꽃샘추위에 그만 꺾이고 말았다. 어쩌면 음침한 기운을 못 이겨 감기에 걸렸는지 모른다. 다시 겨울옷을 꺼내며 교실 탓을 했다.  

    

 처음부터 직감하기는 했다. 창가에 놓아둔 제라늄이 시들시들하더니 제빛을 잃었다. 이사할 무렵의 짱짱했던 줄기는 광합성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울고 가늘어졌다. 목숨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보였다. 꽃이 피기는 커녕 옹골차게 자라는 새잎마저 볼 수 없다니 우울했다. 식물이 그들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사이에 나는 병이 났다. 한 번 걸린 감기는 나를 끌어안고 질기도록 오래가더니 기침을 끌고 다녔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모순인지 당연한 일인지 우리 반 아이들은 나와 달리 거뜬했다. 음침하기만 한 이곳을 자신들만의 세계로 이용하는 재주가 놀라웠다. 경기장을 옮겨 놓은 듯 ‘무조건 달리기’라는 종목에 심취했고 나는 애간장을 태우며 기강 세우기에 골몰했다. 먼저 뛰기만 해도 따라오는 선수들로 금세 어수선하더니 동시에 레슬링으로 종목을 변경하며 즐겼다. 그들만의 리그로 교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모양이다. 뜻하지 않는 일이 순식간에 발생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아이들만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단순한 몸싸움인 줄 알았다가 피를 흘리는 친구를 보고 순식간에 공포감을 느낀 아이는 덜덜 떨고 있었다. 턱이 깊게 찢어져 피가 흘렀다. 흐르는 붉은 피만으로 공포감으로 자아내기 충분했다. 아수라장인 교실은 금세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달갑지 않은 심판이 된 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중단시켰다. 원망의 눈초리가 나를 향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며칠이 못 갔다. 허망하게 하루도 못 견디고 또 일렁거린다. 실실 웃어가며 봄바람을 잔뜩 묻혀와서는 나만 바라보며 웃었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표정 관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 하다못해 책상과 바닥 그리고 내 자리 쪽으로 와서는 히쭉 웃으며 봄 내음을 줄줄 흘렸다.  

    

 시간의 흔적은 묘하다. 벚꽃이 지고 민들레가 흔들리면 각이 지고 딱딱했던 교실은 겉모양과 다르게 모나지 않고 둥글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천방지축 아기 티가 물씬 풍기던 아이들도 조금 아주 조금씩 변했다. 연필이 없는 친구에게 빌려주고 싶어 서로 일어나고, 다투던 사이가 분명한데도 블록 놀이하며 키득거린다. 가끔은 그 맑은 에너지가 나를 향해 훅! 하고 전해질 때가 있다.   

   

 늦은 봄이 돼서야 기침이 누그러들었다. 아무도 없는 오후가 되면 열린 창문으로 운동장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고요해서 좋아질 때다. 알아보지도 못하게 휘갈긴 국어책을 점검하고, 발랄한 주인들이 외면한 연필과 지우개,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린 산만한 흔적을 정리한다. 또 나이스란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에서 업무까지 처리한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칙칙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던 나는 이곳이 점점 편해지고 정이 갔다. ‘내년에도 그냥 여기서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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