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범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동안 우리 눈을 교묘히 피해 온 녀석의 정체를 알고 나니 입이 딱 벌어졌다. 자동급식기의 먹이가 매번 바닥나는 게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예상치 못한 손님들 때문이었다.
두 달 전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는 없고, 설령 있었다 한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인이 없는 집을 지켜주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먹성 좋은 길고양이들이 찾아오는 게 반가워서 밥그릇도 더 늘렸을 정도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둘은 원래 마주칠 일도, 다툴 일도 없는 사이다. 하늘과 땅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니 서로 신경 쓸 일도 없었을 텐데, 우리가 둔 자동급식기를 둘러싸고 서로 경쟁자가 된 셈이다.
시골에서 자란 덕에 동물의 습성은 꽤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번 일로 한 수 배웠다. 길고양이와 한판 붙어 우리를 완벽하게 속인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푸른 긴 꼬리를 가진 '물까치'였다. 예쁘장한 생김새와 달리,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녀석들이다.
두 무리는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짠 듯했다. 영리한 물까치들이 무리를 지어 들이닥치면, 고양이들은 수적 열세를 깨닫고 슬그머니 물러나지만 결코 영역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밤이 되면 시골집은 다시 길고양이 차지가 될 테니. 물까치는 생각보다 영리하고 잽싸다. 그동안 내가 칭찬하며 주던 먹이를 매일 잔치상 받듯이 즐겼을 것이다.
빠르게 소진된 이유를 알게 된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물까치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와 급식기를 장악하고는, 마치 자기네 것인 양 당당하게 먹이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승리의 날갯짓을 하며 으스대다가 몰래 잠입한 우리에게 들켰지만.
길고양이가 나무 사이를 날쌔게 뛰어다니는 건 봤어도 하늘을 나는 건 본 적이 없다. 물까치도 나뭇가지에 앉아 꼬리를 가지런히 하며 우는 건 익숙해도, 고양이 먹이 장소로 쓰던 옛 닭장에 떼로 몰려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