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진 May 21. 2024

미래의 불확실성이 설레게 한다

 아직도 난 성장 중이다. 혹시 키가 지금도 자라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기록을 잴 때마다 확인해도 변함이 없다. 내가 말한 성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으로 기대되는 성숙한 단계, 즉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아직도 난 미성숙한 면이 많다. 그래서 어른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편이다. 직장을 다녀 밥벌이는 했는지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실정은 무척 어둡다. 그리고 사리분별 못하며 여전히 꿈을 좇는다.


 그래서일까? 난 지금도 얘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신작이 나오면 극장부터 찾는데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이 넓어져 이제는 성인들도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로부터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늑대아이', 그리고 신카이 마코트의 '너의 이름은' 등. 극장판이 막을 내리면 CD플레이어로 몇 번을 다시 봤다. 요즘은 OTT플랫폼에서 찾기만 하면 오래전 것도 볼 수 있다. 영화라는 매력에 빠진 이들에게는 참 좋은 세상이다.


 "철없이 저런 거나 보고. 한심하다!"  

 숨 막히던 중학생 시절. 일요일에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TV 앞에 있었다. 부모님은 동생들이 옆에 있는데도 나를 두고 혀를 찼다. 우리는 두 살 터울로 고만고만한 또래인데 왜 내게만 해당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른 일어나 교회 가야지?"

 나는 '은하철도 999'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하필이면 TV로 방영하는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를 가야 하는 시간과 겹친다는 사실은 불운에 가까워 힘이 빠졌다. 교회 장로인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는 당장에 집을 나가라고 할 게 분명하였다.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던 나는 아버지가 허락할 만한 방법이 떠올랐다. 배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 양심에 걸렸다.


  "아버지. 저 배가 아파요."  

  "그럼, 너는 집에서 쉬거라."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으니 몰래 볼 필요는 없다. 으슬으슬한 몸을 아랫목에 맡기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들킬까 봐 가슴 졸인 마음은 이내 녹듯이 사라지고 즐거워졌다.


  일요일마다 방영된 '은하철도 999'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어린 주인공인 철이, 신비스러운 모습의 금발미녀 메텔, 그리고 우주로 날아가는 기차와 기계인간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SF영화가 뭔지 모르던 시절에 이미 우주와 기계문명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이다.


 철이는 빈곤한 생활을 벗어나 엄마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기계몸을 가지려고 했고, 메텔의 도움으로 목적지인 행성으로 떠난다. 매회 기차역에서 내리면 새로운 별이다.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종착지인 프로메슘 행성과 비밀스러운 매텔의 정체가 궁금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은 컬러 TV인데도 영화는 흑백처럼 칙칙하고 어두웠다. 철이가 그토록 원한 기계인간들은 영원한 삶을 허투루 보내거나 인간성마저 잃어 다른 이까지 파괴한다. 결국 영원한 삶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지 철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본다. 기계몸을 포기하는 철이. 난 철이를 통해 과학문명이 우리 인간에게 항상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가 필요하다. 철이에게는 메텔이 그런 존재다. 그녀는 중간중간에 의미 있는 말을 하는데 철학적 질문 같아서 어려웠다. 

 "자신을 위해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영원의 삶이든 미완의 삶이든 살아갈 용기가 없다는 거야!"


 그 시절의 나도 철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철부지였다. 갑갑하던 중학생 시절에 내 주의를 끌만한 것은 TV였고 '은하철도 999'의 철이와 메텔의 시각다. 숨통이 트였던 유일한 탈출구인 동시에 꿈을 꾸게 한 나침반이었다. 불확실한 우주세계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진지한 내용은 무겁지 않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래서 일요일마다 내 마음에 들어와 짜증 나고 허기진 마음을 풀어주고 채워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호모 헌드레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