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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Oct 26. 2024

민이의 감정 버튼

  “Stary sta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Vincent)는 다시 들어도 우울하면서 감미롭다. 색으로 표현하면 검푸른색 느낌이다. 


  교실에서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서울로 전학을 간 민이가 보낸 것이다. 낯선 학교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같이 공부한 교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이 그립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서울 친구들에게 뒤지지 말라며 어머니가 학원을 등록한 사연과 그래서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이 노래를 듣고 있다고 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장마철이라는 일기예보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베란다 창밖은 검은 회색빛으로 무거워 보였다. 난 출근을 서두르며 우산부터 챙겼다. 고흐 전시회에 갔다가 마음에 들어 산 우산이다. 별이 흐르는 푸른 밤이 펼쳐진 우산 속에서 꿈틀거렸다. 걸어서 출근하는 동안에 만나는 이마다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산을 쳐다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산은 점점 자신만만하게 걸었고 내 키를 넘어 당당하게 비를 맞았다. 1층 현관에 나와 있던 관리자는 출근하는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순전히 우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우중충한 하늘. 창밖의 거리는 고인 빗물과 지나가는 우산들만 보였다. 검정 우산들은 부산했고, 그것보다 작은 노란색과 분홍색 우산들은 총총거렸다. 그걸 쳐다보며 아침에 쓰고 온 내 우산이 얼마나 눈에 띄었을지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오후수업을 계획했다. 그날 시간표와는 전혀 다른 교육과정이다. 음악과 미술, 거기다 영어 수업을 모두 융합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교과서가 필요 없는, 오후 2시간을 이끌어도 충분한, 흥미를 느낄 만한 자료가 필요하다. 바뀐 수업을 미리 설명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밑밥을 깔아놓듯이 점심시간 내내 자료를 준비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물감이며 캔버스도 구할 수 없는 가난한 화가 고흐. 정신병원에서 창살로 보이던 밤하늘을 그렸다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큰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사이프러스 나무와 수많은 별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이 현란하다. 아이들은 고흐의 힘든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에 푹 빠진 표정이었다. 낮게 깔리듯 내 목소리도 조용했다. 그림이 마음으로 느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던 아이들도 밤하늘과 고흐 이야기에 조금씩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별이 잘 보이지? 어쩌면 고흐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는지 몰라. 너희들은 별빛이 어떻게 보이니?”

  “저거 뱀 같아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래를 알려주었다. Starry,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로 시작되는 익숙한 목소리와 고흐 그림이 화면에 보였다. 잔잔하게 시작하는 기타 소리부터 듣기 좋다. 몇 번을 들어도 돈 맥클린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고흐의 그림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벌써 흥얼거렸고 몇몇 아이들도 따라 불렀다.


  다행히 아이들은 느낌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이후에도 종종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중 민이가 가장 자주, 그리고 적극적으로 신청했다. 두말없이 민이의 부탁이라면 난 들어줬다. 민이로 인해 Vincent(빈센트)는 내게도 특별한 노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이는 그날 눈물을 보였다. 조용히 글썽이었고 창피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난 이유를 묻지 않았다. 가끔은 노래를 들으면서 때로는 그걸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우리는 노래를 통해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다. 감정이라는 버튼이 가장 먼저 알아채고 누르는 것 같다. 그날 민이도 그랬을 거다.     


  편지를 보니 눈물 흘리던 민이가 떠올랐다. 내가 모른 척했어도, 고흐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듯한 민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결국 내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돈 맥클린도 이런 마음으로 하루 만에 이 곡을 작곡했을 것이다. 그와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 살지만, 고흐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같다. ‘별이 빛나는 밤에’ 속 고흐의 감정을 순수하게 느끼는 민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by 응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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