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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Jun 08. 2023

16.  키조개 미역국의 놀라운 효능

『곁에 있다는 것』을 읽고

 생신도 아닌데 미역국을 또 끓이고 있다. 죽을 것 같다는 엄마는 이 미역국을 드시고 나서 정말 기적처럼 일어나셨다. 특별한 비법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음식이 때로는 생각지 못한 효능을 보이니 신기하였다. 그 장본인은 이번 기회에 음식을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진지하게 '당연히 찬성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도 쾌재를 불렀다. 그가 만들어 준 매운탕 맛은 횟집에서 먹어본 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 그래서 생선요리는 내 손을 벗어난 영역이 된 지 오래되었고 주말이면 그가 해주는 음식을 기다릴 정도이다. 


 지난달, 엄마는 입맛이 없어 금방 죽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듣는 입장에서는 덜컥 겁이 나는 말이지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또 다. 가끔씩은 제대로 써먹는 말이라서 내 귀에는 '너희들, 언제 올래?'라는 소리로 바뀌어서 들린다. 

 우선은 알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곧장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주말을 기다렸다. 그렇게 해서 본 엄마는 음식을 정말 못 드신 모습이었다. 얼굴은 무척 핼쑥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아파 보였다. 비가 오는데도 오전 내내 옥수수와 콩을 심은 일이 무리였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을 때까지 엄마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풀이 나거나 말거나 절대 들어가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나도 일어났다. 뭐라도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뜨뜻한 국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안방에서 엄마와 씨름하는 동안 그는 키조개를 이용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자 다행히 숟가락을 들었고 사라진 입맛을 돋웠는지 밥과 함께 국을 두 그릇이나 드셨다. 어쨌거나 나름의 있는 솜씨로 쓰러진 엄마를 일으킨 사람은 내가 아니라 사위였다.




 고향으로 다시 가는 날이다. 이번에도 사위는 키조개미역국을 또 끓여드리고 싶단다. 지난번의 기적 같은 음식의 효능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더욱 의기충천하다. 내가 볼 땐 미역국보다는 보고 싶은 자식 얼굴이 더 큰 효과가 컸을 것 같지만 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정성으로 만든 음식 속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산삼 같은 효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시가에서 얻어 온 간장꽃게장과 절여서 둔 우럭과 조기까지 가져가겠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특별히 아들에게 주려고 일부러 시장 가서 큰 걸로 사서 절인 생선인 만큼 그건 안된다고 말했는데 굳이 챙긴다. 그걸 챙기면서 '이상하게 장모님은 비린 것을 참 좋아해.'라는 말까지 보탠다.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까지 있는 사람이다.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을 주문한다. 먼저 건미역을 찾아달랜다. 어쩌다 가서 들여다보는 부엌이라 나 역시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사위가 우리 엄마를 위하는 마음으로 저러고 있으니 하인 다루듯이 한다 해도 군말 없이 들어주고 싶었다. 미역을 부랴부랴 물에 불리자 이번에는 '적당한 냄비 좀 부탁해. 그리고 간장과 들기름도 찾아줘.'라고 보조가 쉬지 않도록 계속 주문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내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만큼 누구나 할 정도로 이 요리는 참 간단하다. 별건 아니지만 궁금한 이들을 위해 잠깐 소개한다.

 

 싱싱한 키조개를 적당히 잘라 들기름을 넣고 살살 볶는다. 뽀얀 조개국물이 우러나오고 고소한 향이 나면서 벌써 식욕을 확 돋게 해 줄 것이다. 여기에 불린 미역을 넣고 살짝 더 뒤적이면 미역향이 더해진다. 자작자작할 정도로만 물을 붓고 간장과 마늘을 넣은 후 푹 끓이면 여느 미역국에 비해 맛깔스러운 맛이 난다.


 옆을 보니 그는 어느새 간장꽃게장을 먹기 좋게 다듬어서 접시에 놓고, 보기만 해도 큼직하고 먹음직스러운 생선요리를 위해 갖은양념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고춧가루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좀 찾아줘.'라는 주문이 들렸다. 서둘러 엄마가 주로 사용하던 싱크대 아래를 열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양념통들의 바깥 부분은 허옇게 곰팡이가 피었고 손을 안 댄 새 그릇에는 얼룩이 생겼다. 이곳을 도통 열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 거미줄까지 침입한 흔적은 그전까지는 없던 일이다그동안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으로만 끼니를 해결한 걸로 보인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깊어지더니 가장 기본적으로 느낀다는 허기조차 잊게 만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몸이 아프신 이유는 원기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멀리 있는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 커서 몸이 먼저 반응하여 말했던 것이다.




by 오솔길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떠날 준비를 했다. 서운해도 아무 말 없이 보내던 평상시와 달리 이젠 대놓고 서운해한다. 조금 철이 들었나 보다. 나도 그런 솔직한 표현이 나쁘지만은 않다. 평생 듣지 못했던 애정표현에 가슴이 찡하다.

  "벌써 가냐?, 더 있다 가지."

  "엄마, 내년엔 엄마 옆집으로 우리가 올 거야. 좀만 기다려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 고맙다."

  "진짜라니까요"

  "내 걱정일랑은 하지 마."




 『곁에 있다는 것』저자 김중미 님은 지금도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내용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행동을 실천하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그중에서 주인공인 강이 외할머니가 꿈꾸었던 편지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도 고운 소녀의 모습이 있었을 텐데 난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다. 아니 그런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안 했으니 물어본 적이 없다. 가장 예뻤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곁에 있다는 것은 희망을 선택하게 한다.'라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너도 그렇게 라고 속삭인다.


오늘의 책
『곁에 있다는 것』, 김중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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