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작은 구멍 하나가 나를 완벽히 무너뜨렸다. 무릎이나 배만 바닥에 닿는 게 아니라, 상체와 하체가 마치 수영하듯 쭉 뻗은 자세로 넘어졌다. 움푹 파인 구멍에 왼쪽 신발이 걸린 것이었다. 무릎에 가해진 충격이 심해 무척 아팠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있는 길이라 창피함이 앞섰다. '이런 다이빙 자세는 꽤나 인상적으로 보이겠지'라는 생각에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상처 난 무릎과 팔꿈치를 살펴보니, 살갗은 찢어지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얼굴이 멀쩡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어릴 적에는 얼굴이며 행동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엄마와 닮았다는 소리를 더 듣는다. 그래서일까. 엄마와 나는 점점 닮은 꼴처럼 비슷한 일을 겪는다.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엄마가 넘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이 들수록 낙상이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에 더 놀랐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을 다쳤다는 지인의 어머니가 침대 생활 6개월 만에 돌아가신 일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하교 시간에 들떠 넘어지는 것처럼, 집으로 가는 차량에 탑승하다가 사고를 당하셨다. 지팡이가 필요할 정도로 불편한 걸음으로 걷다가 다른 어르신들 사이에서 그만 중심을 잃었던 것 같다. 순발력이 떨어지다 보니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얼굴이 바닥에 부딪혔다고 했다. 전에도 몇 차례 넘어지셨던 엄마는 코와 입술에 상처를 입었고 앞니까지 깨진 적이 있다. 이번에도 다른 낙상 후유증이 있을까 걱정하며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여러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엄마, 이번에도 코랑 입술을 다치셨네요."
"아이고, 나는 꼭 다른 데는 멀쩡해도 코가 깨지더라."
"다행히 앞니는 멀쩡하니 천만다행이네요."
"참, 왜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약을 바르고 난 후 피곤한 듯 바로 잠이 들었다. 곧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코 고는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편안하게 들렸다. 깊은 잠에 든 모습을 보니, 몸 상태가 괜찮으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엄마 댁에 며칠 더 머물렀다. 다행히 큰 이상이 없었고, 센터를 다시 나가기로 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아드리며 아파트 현관까지 함께 걸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았다. 현관에서 만난 센터 선생님이 엄마를 보며 "어르신, 이런 신발 말고 한 번에 들어가는 신발로 바꾸세요. 또 넘어지시면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한 번에 들어가는 신발이라니, 정말 그런 게 있을까? 슬리퍼를 신으라는 뜻은 아니겠지 싶었다. 넘어지지 않는 노인 전용 운동화라도 있다는 말일까? 나는 의아해하며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엄마는 태연하게 "알았습니다"라며 살짝 미소까지 띠셨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신발은 내가 사드린 것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을 권한 뜻임을 곧 알게 되었다.
그날 엄마의 태연한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우리를 진정으로 지탱해 주는 건 신발이 아니라,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손이라는 것을. 엄마와 손을 꼭 잡고 걷는 그 순간, 그 손길이야말로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신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손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헐거워진 신발처럼 마음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