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을 Sep 19. 2023

덤덤한 안녕

모든 사진을 지우고 나서 할 수 있는 말


그렇게 난 고민을 했다. 

이 친구에게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낼지 말지. 할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았을 때는 이미 한국은 자정을 넘겨 생일이 지나버렸지만 유럽은 시차로 인해 아직 생일이 유효했다. 나는 바로 인스타로 문자를 보냈다.


' 안녕 잘 지내지? 보낼까 말까 하다가 보내. 생일 축하하고 좋은 하루 보내 '


잘한건가 싶었다. 그렇게 잠을 청했고 따로 알림이 없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인스타를 들어갔다. 

문자 보내줘서 고맙다고 난 잘 지내고 넌 잘 지내냐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어색함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헤어졌어도 한때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자,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라 반가움이 더 먼저였다. 그때의 일들은 잘 해결된건지 지금의 상황은 어떤지 등등 물어볼 것들이 참 많았다. 시차도 있었고 서로의 답장 속도도 빠르지 않아서 5일 가량 롱 딜레이로 연락을 하다가 그냥 전화를 한번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이 관계에서 난 순리를 따르고 싶어서 상황이 흘러가는대로 내비두었다. 


놀랍게도 그 친구가 먼저 전화 하자고 말을 꺼냈고 우린 한국시간 토요일밤 새벽 1시에 전화를 했다. 연락을 안한지 2달 반이 흘렀는데도 왜 이렇게 어제까지 같이 있던 사람처럼 친근했던지. 그동안 난 안 좋게 헤어진 경우가 대반수라 헤어지고 나면 사진들을 다 지우고 번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었다. 그랬던 내가 전 남자친구와 다시 전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 어색하면서 편하고.. 참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화가 나는 건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하는데 참 좋았다. 우리가 헤어진게 맞나 할 정도로 내가 애써 내 감정을 무시했던 2달 가량의 시간이 별 볼일 없게 느껴졌다. 우리는 안부를 묻고 장난도 치고 평소와 동일했다. 넌지시 우리의 사진들을 지웠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나도 사진들을 지우기엔 아직 마음이 너무 아팠고 그 친구가 보고 싶을 때는 사진들을 보며 그리워한 적이 많아서 나도 지우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있었었다. 


통화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직도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난 확실하게 다시 말했다. 롱디는 하고 싶지 않고 주변으로 이사오는게 아니라면 플러팅 하지 말자고. 씁쓸하게 만드는 문장들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고 다음엔 언제 문자할 것 같아 ? 3달 후인 내 생일 ? 이라는 말에 너무 멀다고 그 전에 할 것 같다고 했었던 말들이 생각난다. 


전화를 끊고 보니 4시간인가 지나있었다. 그렇게 자고 나서 좋은 아침 이라고 문자를 할 뻔 했다. 휴..

난 전화 통화 이전의 관계로 다시 인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더더욱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사진들을 보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마 그때 그 친구가 따뜻한 말을 보냈다면 그래 다시 해보자. 롱디가 뭐 어때서. 라고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다. 


너무 생각이 나서 일주일이 지나고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그 친구의 반응이 나만큼 열정적이지 않았다. 무언가 내가 더 끌어주기를 바라는 태도였고 난 바로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 어제 오후, 사진첩에 있던 그 친구와의 모든 사진들을 삭제했다. 모든 대화와 사진들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실 어제 삭제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최근에 친해져 매일 연락을 하게 된 친구A가 있었는데 연락을 주고 받던 whatsapp 을 삭제하고 다시 다운받고 보니 백업이 안되서 친구A와의 모든 대화가 사라져버린 일이 있었다. 이렇게 한방에 한 사람과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 꽤 충격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한 나와 그 친구의 관계가 떠올랐고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되었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고 사진들을 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선물로 준 사람으로 남을 뿐 현재의 사람은 아니게 된 것이겠지. 이제는 진짜 우리 안녕이다 하면서 모든 사진을 삭제했고 휴지통까지 비웠다. 혹시 나중에 보고 싶을 때 사진 한 장 없어서 후회할까봐 한장이라도 남겨놓을까 했지만 뭐 굳이. 내 머리속에 아주 뚜렷하게 남아있고 또한 중요한 것은 사진으로 기억하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 이라는 문장을 난 믿기에 그렇게 난 그 친구를 보내주었다.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마디 하자면, 이 시간 동안 사랑 안에서 또 성장하고 나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해서 좋았다. 다른 문화권의 연인을 만나 서로가 다르게 정의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의 관점이 더 풍성해진 것 같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후회없이 빛나는 시간들에 고맙다. 














제 사적인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자님들도 자기 자신도 사랑하고 상대방도 사랑하는 예쁜 사랑하면서 소중한 순간들 차곡차곡 쌓아가길 바라요. 




작가의 이전글 이별할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