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았네
"사과를 하려면 그때 했어야지. 너무 늦었어."
- 은중과 상연 中
절교한 지 10년 만에 찾아와 지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상연에게 던진 은중의 대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놓인 물리적 상황들을 모두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래봐야 불과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마흔이 되기 전 이야기지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해하자.'
'그 사람은 원래 성격이 그런 거지 악의는 없으니 이해하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이해하려고도 해 보았고, 어떤 때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 노력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마흔이 되고 나서야, 이토록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인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 해결된 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애매한 시간이 흘렀다. 고맙다는 말을 꼭 들으려 했던 건 아니지만, 긴 시간은 아니어도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한 사이였다. 게다가 도움을 요청해 도운 건데 그 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에둘러 다른 말만 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바빠서 그렇겠지' 하고 이해하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고 그 사람과 나누던 우정과 마음도 함께 가셔 버렸다. 그 후론 만나면 인사만 하는 비즈니스 같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내 소중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건 타이밍이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때를 놓치면 참 민망해진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그리고 겸손해지자고 다짐해 본다.
'은중과 상연'은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좋아하는 김고은 배우가 출연하기도 했고, 마흔셋 우리들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았을 것 같은 기대감에 사흘 밤을 새워가며 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은중과 상연'을 설레며 재미있게 본 건,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그 시절 '대학 신입생, 동아리, 선배, 첫사랑'과 같은 키워드에 공감되었던 것이지,
아직도 상연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상연.
10대와 20대의 상연은 안타까운 마음에 안아주고 싶은 모습도 있었지만,
결국 자격지심의 틀을 깨뜨리지 못하고 배신과 미움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30대의 상연.
"이러면 끝내 누가 널 받아주겠니?"라고 말하는 은중의 대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곤 마흔이 되어 불쑥 찾아온 이유가. 차마 말잇못.
상연아, 왜 그랬니? 은중인 어쩌라고.
아니,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20대 때도, 30대 때도,
은중과 상연의 두 번의 절교 원인을 잘 생각해 보면, 빠질 수 없는 한 인물.
구)손명오 현)상학선배.
한 편 한 편 심오하게 빠져들어 보다가 갑자기 든 생각, '역시 삼각관계는 피곤해.'
어쨌거나 은중과 상연 덕분에 여고시절과 스무 살 대학 새내기 시절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밤이다.
우린 모두 때론 은중이었고, 때론 상연이었다.
배우 김고은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