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인 요즘, 아이 둘이 돌아가며 열 파티, 콧물 파티를 해대고 간간이 폭죽처럼 터뜨려 주는 쿨럭쿨럭 가래 섞인 기침 소리까지.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던 며칠 전, 저녁 시간.
퇴근이 늦어진다는 남편의 연락에 아이들 먼저 일찌감치 저녁 먹여씻기려고 서둘러 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반찬을 꺼내 정성스레 담고, 냉동실에 꽁꽁 얼려 두었던 친정 엄마표 미역국을 팔팔 끓여 금세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냈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나니 뭔가 입맛 당기는 음식이 먹고 싶어 져 팬트리를 열어 스캔하던 중, 바구니 안에 덩그러니 하나 남아있던 짜장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짜장라면은 산 적이 없는데? 아, 맞다. 얼마 전 친정에서 닥치는 대로 반찬이며 간식이며 휩쓸어 올 때 딸려 왔나 보다. 친정은 나의 마트다. 그것도 공짜마트. 온갖 종류의 식료품을 무료로, 허락도 없이 가져올 수 있는 내 전용 마트. 그 마트의 사장인 엄마, 아빠는 큰 딸이 온다는 전화 한 통에 거덜 날 것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참 다양하게도 물품을 채워놓느라 바쁘다. 공짜로 막 가져가는 처지에 가끔은 반품도 한다. "엄마, 이거 저번에 준 건데 안 먹어서 도로 가져왔어."
자, 그렇다면 친정마트에서 가져온 짜장라면을 한 번 끓여볼까? 짜장라면 물 맞추기가 은근히 어려운데 이번엔 물을 적당히 버리고 적당히 남겨 아주 알맞게 되었다. 마지막 올리브유까지 한 바퀴 돌리고 나니 뚝딱 한 그릇이 차려졌다. 예전에 먹방 유튜버들이 짜장라면을 맛깔나게 먹던 장면이 생각나 오이를 채 썰어 올리고 반숙 달걀 프라이까지 무려 2개를 얹어냈다. 인스턴트 라면 한 봉지가 근사한 요리로 탄생되는 순간이다.
파김치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반숙 계란에 짜장라면을 크게 말아 한 입 막 먹으려던 순간, 큰 딸이 외쳐 묻는다.
“왜 엄마만 맛있는 거 먹어?”
둘째가 거든다. “나도 먹을래, 나도.”
한 젓가락씩 덜어주고 나니, 반절이 훅 줄었다.
게눈 감추듯 짜장라면을 먹어버린 두 딸들은 내가 맛도 보기 전에 또 외쳐댄다.
“더 먹을래. 또 주세요.”
“그렇게 맛있어?”
대답 대신 미소와 함께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이들을 보며, 안 먹어도 배부르다면 거짓말이고 나도 배가 많이 고팠기에 이 조금 남은 건 엄마 거라고 선포했다. 그리곤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며 호들갑 떨었다.
“아이 매워, 아이 매워. 고춧가루 때문에 애들은 못 먹겠다. 이제 엄마 다 먹는다.”
이렇게 또 한 끼를 때우고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가끔 음식점에 짜장면을 먹으러 간 적은 있어도 집에서 짜장라면을 끓여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인스턴트 음식을 지양하고 있기는 하지만 짜장면은 되고, 짜장라면은 안 될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잘 먹는 줄 알았다면, 내가 이렇게 짜장라면을 잘 끓이는 줄 알았다면,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끓여줄걸.
먼 훗날, 아이들이 크면 입 주위에 검은 수염 그려가며 짜장라면 먹던 시절을 그리워할 텐데.
더 먼 훗날, 딸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게 되면 가끔 친정에 와서 짜장라면을 끓여달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