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질바질 Jun 12. 2024

UTOPIA: NOWHERE, NOW HERE

감사했어요, 그대! 그리고 내 딸도 멋있게 키워볼게요.

작년부터 친구들과 책 모임을 하고 있고, 덕분에 혼자 독서를 했다면 알지 못했을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김초엽 작가의 SF소설 ‘행성어 서점’이었다. 행성어 서점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고 했지만 늘 그렇듯 미루어지고 잊혔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작품을 기반으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김초엽 작가를 소개해준 친구와 함께 전시를 같이 보기로 하였다.      


임신 중이라 지정 자리가 있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맞지만, 약속장소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전철을 포기하기엔 내가 게을렀다. 임신 전이라면 빠른 하차를 할 수 있는 곳에 줄을 섰겠지만, 이번엔 임산부 배려석 표시가 있는 칸에 줄을 섰다.      


시간이 애매해서였을까. 전철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을뿐더러 임산부석엔 사람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임산부 먼저’라고 적힌 자그마한 분홍색 배지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내 머리 위에 ‘저는 임산부예요!’라고 적힌 반짝거리는 광고판을 이고 있다면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는데,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내가 찜해둔 자리 앞에 서성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순간 언짢았다. ‘내가 찜콩한 자리인데, 어디서 나타난 거야?’하며 그의 배를 나도 모르게 곁눈질하였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 이고 출발한 지 한 정거장이나 되었을까. 그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계신 (70대로 보이는) 할머니에게 “여기 임산부 배려석이에요. 일어나 주세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앉으라고 미소를 보내는 것 아닌가! 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홍해처럼 갈라졌다. “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좌우에 인사하며 토끼 눈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내 머릿속에 있던 ‘저 임산부예요!’라는 화려한 광고판을 보았을까. 그가 내릴 때 고맙다고 다시 인사하고 싶었는데, 내가 앉은 곳 맞은편에서 서 있더니 내 옆에 위치 한 승하차 문이 아닌 다른 문에서 내리며 홀연히 사라졌다.      


자리를 빼앗기신 할머니는 동행하셨던 할아버지 자리에 앉아 한동안 나를 보시는 건지 전광판을 보시는 건지 내 쪽을 보시며 가셨고, 졸지에 할아버지는 30분가량을 서가셨다. 그분들이 떠나고 나서야 다리를 조금 편하게 앞으로 내밀어 보았다. 그러나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무수히 타고 내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이날만큼은 왠지 마주하기 힘들었고, 서울로 점점 들어설수록 젊은 사람들로 매워지는 전철을 보고 나서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전시를 보고 집에 내려가는 동안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던 전시회 ‘UTOPIA: NOWHERE, NOW HERE’를 떠올리며 내가 이 전시회를 오기 위해 탔던 전철이 유토피아를 향해가던 찰나의 전철을 우연히 타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문뜩 생각하였다. 흉흉한 세상 속에서 내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살짝은 막막했던 5개월 차 임산부가 인터넷에서나 볼 법한 일을 실제로 겪어보니 세상이 살만한 건지 아니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의심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싶어졌다.      


그러나 나를 도와주었던 그의 행동이 옳았던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 나를 도와준 것인지 아니면 엄마의 말처럼 그의 업무가 임산부 관련된 일이라 할 수 있었던 일인지는 영영 알 길이 없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용용이와 함께 있으면서 내가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고,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딸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기대가 된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철에서 생소한 경험을 선사했던 그에게 제대로 된 인사나 건네지 못한 것 같아 이 글에나마 그에게 이야기를 인사를 건네어본다. 감사했어요, 그대! 그리고 내 딸도 멋있게 키워볼게요.


전시를 들어가기전 별명을 짓는 칸에 '용용이와 함께'라고 적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성장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이루어지고, 더 밝은 미래가기대되는 곳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봄을 버무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