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다.
40에 백수 되다.
내 나이 마흔. 2023년에 40이 되었다. 만 나이로는 아직 38이지만 사회적 나이는 40이니까. 어쨌든 마흔.
지금까지 삶을 돌이켜 보면 무난하고 평탄한 삶을 살진 않았다. 모두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힘듦이 있었겠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그런 삶.
내 삶이 특별히 기구했던 게 아니라 남들이 평범하게(물론 그 과정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여러 고충이 있었겠지만), 어렵지 않게 했던 그런 일들이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된다.
20대 초중반에 일찍 결혼한 친구는 큰애가 벌써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30대 초반에 결혼한 내 여동생의 외동딸은 올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는 40에 내가 결혼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나이 먹도록 진지한 만남을 가진 남자 한둘이 없었겠냐만은 나는 그냥 결혼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만약에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이에 사랑에 눈멀어 덜컥 결혼을 했었더라면 상대에게나 나나 괴로움만 남았을 것이다.
변덕스럽고 짜증 많고 예민한 내가 누군가와 평생을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어린아이들을 너무 예뻐하지만 조카와 잠깐 몇 시간 놀아주는 것만으로 진이 빠져 널브러진다. 그걸 24시간을 한다고? 불가능하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너무 미성숙한 사람이라.
20대의 나는 끝없이 외로웠고 원인 모를 불안감에 방황했으며 빨리 서른이 되길 바랐다. 서른이 되면 20대에 가졌던 알 수 없는 공허와 불안감이 모두 소멸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뭔가 진짜 어른이 될 것 같은 나이였다. 20대의 내게 서른은 그런 나이였다.
막상 서른이 돼보니 개뿔.
막 잘 나가진 못해도 고정된 직장에서 무난히 일하며 안정감을 얻었을 거란 내 기대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20대 때보다 욕심만 많아진 그런 이도저도 아닌 인간이 돼 있었다. 밖에서 살다 보니 돈은 모이지 않았고 안정된 직장도 없었고 집에서 원하는 결혼상대를 데려가지도 못했다.
다행인 건 2녀 중 장녀인 내게 결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내 결혼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친건 그 당시 아빠와 재혼한 새엄마였다. 아니 친부인 아빠가 별말 안 하는데 날 키워준 것도 아니고 같이 산 시기도 별로 안 되는 새엄마가 왜?
아빠는 지금 그 새엄마였던 사람과 이혼 소송 중이다. 작년 아버지 생신에 다시 돌아온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기시라고 이혼 축하금으로 용돈을 평소보다 조금 더 넣어드렸다. 물론 [돌아온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기시라]이 말도 함께 전달했지. 하. 하. 하.
작년인가 재작년부터 이어진 아버지의 이혼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라 아버지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나 동생네서 같이 밥을 먹는데 어쩐 일로 나를 태우러 오셨다. 타 지역에 살다가 아버지 이혼소송 소식에 혼자될 아빠가 조금, 아주 조금 걱정이 돼 작년 봄에 급히 본가가 있는 대구로 이사를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은 노후된 주택단지에 경사도 심하고 길이 좁고 이상해 택시 운전사분들이 좀 꺼리는 동네다. 아버지도 초행길에 네비 따라오시다 역시나 길을 잘못 드셨다. 내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사는 꼴이 보여줄 만하지도 않아 따로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어서다.
동생네로 가는 길에 근황토크를 했다.
아버지, 8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신단다. 스트레스받을 바에야 그냥 조금씩 태우라 말씀드렸다. 담배야 기호식품인데 뭐. 애초에 끊으란 사람도 없었는데 담배값이 인상되던 그때 비싸다고 끊으셨던 거다.
여하튼 내가 결혼을 포기한 것에는 아버지의 지분도 아주 조금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결혼을 세 번 하셨고 결혼생활 내내 친모를 포함한 어떤 분 하고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으셨다. 아무리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도 그렇지. 정도가 너무 했달까. 보통 딸은 아버지와 사이가 살갑다던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오히려 아버지와 사이가 나빴으니까.
마흔이 된 지금 30대 때의 욕심을 내려놓고 방향을 알 수 없던 분노를 잠재우고 가진 것 없이 졌던 빚(이건 실제 금전이다.)을 다 청산하고 나니 혹사시켜 너덜거리는 몸뚱이와 세상사 온갖 풍파에 단련돼 조금은 강화된 멘탈이 남았다. 가진 것 없지만 까야할 빚도 없다. 많은 걸 내려놓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건 덤이다.
남의 눈에 어쩌건 나는 나대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 남 탓을 해보려 한다. 나는 이곳에서 남 탓, 세상 탓을 하며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