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나쁜 마음 일기
내 마음에 그득했던 나쁜 마음 해우소에 버리기.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어느 한 의사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유튜브에서 한 말이 기사화 됐다.
"노년에 필요한 건 의사 아닌 간병인"이라며, 사람들은 어떻게 늙어서 어떻게 죽어가는지 모른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건 간병이고, 의사가 많을수록 고통스러운 삶만 연장될 뿐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문화일보 2024년 2월 27일 "노년에 필요한 건 의사 아닌 간병인"... 한 유튜버 의사 발언 커뮤니티서 논란)
이 의사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니 다행(?) 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의사는 다른 사람의 생명과 인생에 대해 얼마나 오만한가 생각했다.
사실 지난번 글을 썼을 때, 그 글의 2배 분량의 글을 썼다가 삭제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최선의 내용으로 정리해 글을 올렸다.
이번 전공의 사태를 겪으면서 내 마음에 올라온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환자가 되어,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의사들이 부리는 횡포를 겪어본 적이 없다.
그들도 부모님이나 가까운 가족의 아픔을 겪을 텐데, 그것을 통해서도 그들은 환자들을- 환자의 가족들을 재단 한다. 본인들은 의사이기에 정리하는 문제들이지만, 일반인 환자는 다르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다른 것이다.
왜 정부보다 사람들이 의료계에 더 분노를 가지고 이번 그들의 사태에 동조하지 않는 것인지. 의사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난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플레이를 정말 잘했다면, 지금 야권이든 여권이든 그들에게 그렇게 좋지 않은 기사들만 판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이제껏 내가 당한 횡포만 적어 보아도 글 한편 쓰고도 남을 것 같지만, 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중증 암환자의 보호자여서 환자에게 혹여 그 글로 피해가 갈까 봐 이다. 이것만 봐도 환자들이 이 부당한 사태에 을의 입장이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그래도 그중에 최선을 다해 주시는 의사들이 있기에 그들의 의지마저 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선한 사람은 소수이지, 다수가 아니기에 그렇다. 남은 소수를 정말 믿고 싶고,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앞의 신문 기사 글로 돌아가서, 나도 참 오만한 생각을 했다. 나에게 고통이 가해지고,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으면 나는 쉽게 내 삶을 포기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나 자신에 대해서는 50:50으로 그러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남편의 투병과정을 겪으면서, 그게 오만한 생각이었구나를 많이 깨닫고 있다. 그 사람이 살고 싶거나 죽고 싶은 건, 어떤 형태로든 그때의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더 많을수록 고통스러운 삶만 가중된다고 했는데, 그 고통스러운 삶마저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다수다. 그 가운데서 희망을 용기를 계속 찾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노년의 존엄성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행동이 가능하고, 배변이 가능한 걸 말하는가. 그 노년의 존엄성 앞에 살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그건 당사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지, 그 의사가 판단할 몫이 아니다.
차라리 그렇게 말한다면, 의사를 늘리는 방안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존엄사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본다.
노인이 되면, 내가 왜 이때까지 살아서. 내지는 내가 빨리 가야지 라는 말을 보통 많이들 하신다. 근데 아이러니는 그게 100%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하루라도 더 산다면, 더 건강히 폐 끼치지 않고 살아보려는 게 다수의 노인들이다.
그 의사는 얼마나 한정된 자신의 생각을 놓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려 하는가. 그것도 인간의 생명과 육체의 고통에 직결된 일을 하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
남편의 피부가 파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복부였는데, 복수 때문에 피부가 늘어나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점점 파란 핏줄인지 멍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점점 번져, 가슴 위쪽과 등, 팔에 늘어났을 때는.. 간이 나빠서 그런 거라는 말에 왜 그런지 이해를 못 했다.
그러다 너무 이상해서 검색에 검색을 하다 알게 되었다. 남편의 증상은 예전말로는 간경화. 요즈음 말로는 간경변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복수, 부종, 저나트륨혈증, 파란색 거미줄 같은 피부변화, 알부민 부족에 나쁜 간수치까지. 간은 한번 딱딱해지면 되돌이킬 수가 없다는데..
그 사실을 안 날도 그렇게 펑펑 눈물이 났다. 만약에 임상약이 잘 들어 췌장암에 효과가 있더라도, 남편에게는 간이라는 숙제가 남아있구나. 간이 나빠져서 더 치료를 못 받을 가능성도 있구나. 정말 살고 싶어 버둥거리는데도 또 다른 핵폭탄이 떨어졌다.
신장도 마찬가지다. 소변양이 너무 적다. 독소를 못 빼내면 그것도 큰 문제인데. 신장도, 간도 다 전이암이 있고, 커지고 있다니.. 이 둘을 늘 임상 들어가기 전에 간신히 회복시켜 임상을 하는데, 이제 그 가능성 마저 사라지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남편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침대나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가 되지를 않는다. 남편 몸무게를 들고일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매우 역부족이다.
결국 지난주 병원 퇴원할 때는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남편은 병원 휠체어서 차로 옮겨 타려고 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지하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원 직원을 급히 호출해서 두 명의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일으켜 앉혀 집에 돌아왔다. 젊은 남자가 부축해야 남편을 들 수 있다. 남편은 자리에서 본인 다리를 스스로 무릎을 세워 일으키지도 못한다.
여기에 남편에게는 도움을 받는다는 자존심 문제와 이제 할 수 있었던 게 안된다는 무력감, 그리고 다시 못 일어나고 걸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까지 같이 찾아왔다. 그래도 남편은 살고 싶어 한다. 나을 거라고 분명히 믿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수의 의료의 도움은 노인이거나 장애인인 경우에 잘 받게 되어 있는데, 우리 집처럼 다소 젊은 남자에 대해서는 찾기가 어렵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인데,, 사실 요새는 뭘 어떻게야 좋을지 모르겠는 일이 매일 생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에게 함께 하는 미래라는 게 있을까.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난 이제 겨우 남편과 결혼해서 아직 5년이 되지 않았는데.. 40%가 이 암투병의 시간이다.
인간 관계도 새롭게 생각하게 된 일들이 많았다. 내가 내 마음 살기 위해 정말 미움이 끓어오르는 일들에 대해 미움을 덮고, 어른스럽게 지혜롭게 내가 대처할 방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젠 나도 냉정해져야 할 일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소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소신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수의 사람들은 육아와 다른 간병을 해 본 적이 없으며, 간병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남편을 젊은 나이에 혼자 전적으로 해보지는 않은 케이스가 더 많으며, 간병을 했다고 해도 췌장암을 겪어보지는 못했으니 -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날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힘든 삶- 관심 가져야 할 삶이 있다고.
더하여, 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걸 아예 잘하지 못하는 나쁜 체질이기도 하다. 더더군다나 나는 예민 그 자체여서 내가 감수해야 하는 마음의 강도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크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기에 더 마음의 그릇을 크게 가져야만 한다. 안 그러면 난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내 자신도 말라 버리게 할 것이다.
알고는 있는데.. 내 힘에 부친다. 내 생각, 내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남편의 손발톱도 깎아야 하고, 머리 이발도 해야 하고, 당장 음식을 먹게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게 침상에 누워서 남편이 원하는 각도로 신체가 놓여서 진행돼야 남편이 안 아파하는데.. 답을 모르겠다.
에어매트를 깔아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남편의 엉덩이가 빨갛게 짓무른 걸 뒤늦게 발견했다. 욕창방지밴드도 붙이고, 로션이나 연고도 미리미리 발랐어야 했는데..
놓쳤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남편은 자세를 바꾸어 침대에 눕기가 어려운 여건의 환자이다. 미리 생각했어야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남편이 큰 볼일을 봐야 하는데, 간호사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보호자가 해야 한다 했다.
결국 나는 남편과 갖은 노력 끝에 남편을 침상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다시 휠체어에서 장애인 화장실까지 들어가 남자 화장실 문을 닫고, 남편의 칸에 들어가 남편을 도와주는데 둘 다 무척 고생했다.
다른 환자들은 남편보다 상태가 나은지, 지팡이 짚고 다니고, 휠체어를 타도-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변기에 혼자 앉을 수 있었다.
그 작은 사실이 그렇게 부러웠다. 적어도 혼자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앉을 수 있다는 그 작은 동작 하나가 되고 안되고 가 이렇게 큰 차이인줄 몰랐다.
간병이 육체적으로 지치고, 몸에 나아짐이 있다면- 그래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처럼 계속 나빠짐만 있다면- 마음에 돌덩이도 하나 더 지고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낫는다면- 산다면- 간병의 짐이 매우 가벼울 것 같다.
조금씩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 되는데, 브런치 스토리에 응원하기를 모든 작가에게 오픈한다고 해서 나도 해볼까 고민만 하고 있다.
아직은 남편과의 이 힘든 시간을 값을 매겨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지도 않고, 거기에 동정(?)의 값을 받는 건- 아직도 못내 남은 나의 자존심의 벽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의 마음의 해우소에서 글을 쓰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정도면 지금은 여기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요새의 글은 내가 썼어도 잘 썼다는 뿌듯함이 덜하다... )
방법을 찾아, 하나씩 해가며, 남편과의 하루를 살아내야겠다 다짐해 본다.
그리고 그간 너무 많은 미움의 감정과 나에 대한 자책감에 힘들었던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 글조차 쓸 수 없던 초라한 나도.. 오늘의 나쁜 마음 일기와 함께 이 글에 묻어 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