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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Mar 25. 2024

1. 계란 프라이 꽃

어디엔가 남아있는 생명력의 귀여움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제 10일 정도 지난 듯하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의 몫에 대한 글을 쓰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혼자 가슴앓이 하며 꿍꿍 움켜쥐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다고 생각다. 나눈 들 내 마음과 내 고통은 어떻게 해도 오롯이 내 것이었, 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써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이 일이 생긴다면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생각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그리고 그 후" 매거진으로 내 삶을 적어보기로 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 가장 힘든 건 아침에 운다는 사실이다. 그때 가장 많은 기억이, 지금 상황에 대한 자각이 온다. 반대로 밤은 정신과 약도 있고 의외로 피곤해서 그냥 바로 잠에 들 수 있다. 밤이라도 괜찮아 다행이다.


다른 하나는 감정적인 것 같긴 한데- 심장이 예상 못한 때에 이유 없이 두근두근 뛴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호흡이 가팔라져서 그럴 때는 조금 안정제를 먹고 쉰다.


뭔가를 할 때도 가끔. 이것도 예상 못한 시점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일지 모르겠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오늘 처음 남편의 꿈을 꾸지 않았다. 매일 같은 꿈을 꿨다. 남편이 숨을 거두기 일보직전의 상태에서 난 남편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너무 좋아하고 있다가 갑자기 현실 자각이 온다.


그리고눈을 떴다. 남편을 왠지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찰나의 격한 기쁨이 갑자기 싸늘히 식은 현실로 돌아다.


나는 남편과의 결혼이 너무 좋아서. 푼수 같지만- 결혼반지를 외출할 때는 늘 끼고 다녔다. 남편을 납골당에 안치시키고 난 이후 갑자기 손가락에서 반지의 무게가 여실이 느껴졌다. 목걸이로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백화점에 가서 급히 금목걸이줄을 샀다. 원래 그런 곳은 신혼부부들이 웨딩링을 하러 오는 곳이라 그랬나 보다. 보증서 작성 겸 회원가입을 하는데, 미혼/기혼 란이 떴다. 기혼을 체크하니 결혼기념일을 쓰지 않으면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다.


미혼을 체크하고 회원가입을 마무리했는데, 이혼도 아니고 사별을 한 나는 미혼이라기엔 미혼이 아닌 것 같은데. 애매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걸이에 반지를 걸자 그 반지의 무게가 감당이 됐다. 잘 샀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부모님과 밥을 먹고 대화를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듣기로는 어린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들이 사이가 서먹하거나 갈라서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왜 그런지를 조금은 깨닫고 있다.


부모님이 잘못한 건 없는데, 같은 시간 아픔을 공유했고, 그 와중에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방식의 차이와 감정의 격돌을 겪었다.


우린 다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인데 서로를 안아주려 하는데. 그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든다.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 그렇지만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도 한 시간 이상 만나서 뭔가를 하려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녀와서 여러 감정이 물밀듯 들어와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뭔가 큰 충격을 받은 아이가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내면에 그 충격을 응축한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상태가. 현재 내 상태일 것이다.


남편과의 사진을 테이블에 놓고 계란라이 꽃이라 불리마가렛을 한소끔 사와 작은 화병에 꽂았다.


쑥갓 같은 잎사귀에 계란 라이 같은 꽃이라니 무슨 요리 같지만- 이 꽃은 순수하면서 자연스러운 매력을 가진 야리야리한 소녀 같다.


신기한 건 이 꽃은 절화임에도 물을 잘 주면 힘을 잃고 꼬부라져있던 줄기가 다시 팽팽히 힘을 내 꽃받침을 세워준다는 것이다. 어찌나 신기한지 절화 속에도 남아있는 그 생명력이 참 귀여워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이런 작은 귀여움에 마음의 문을 빼꼼 열어본다. 아직은 내딛기 어려운 마음의 걸음을 재촉할 수 없다. 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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