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흔적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흔적의 무게는 존재한다.
오늘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 3주 가까이 된다.
간병이 힘든 일이었을까- 살거라고 나을거라고 희망고문을 하는 시간이 힘든 일이었을까. 결과가 이미 나온 지금도 뭐가 더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난 1년 넘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결과가 나온 지금의 생각이다. 정말 노력했는데..
결과가 나오면 어떤 의미에서든 조금은 생각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다음에 닥친 일은 '흔적'과의 일이었다.
남편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투병했던 물품들이 사람을 견딜 수 없게 했던 건-'흔적'과의 일에 시작에 불과했다.
집 안 곳곳에 남편의 흔적이 우리의 기억이 남아있었다. 사용할 주인을 잃은 옷가지와 칫솔, 면도기, 신발들이 놓여있었고. 물건 하나하나 마다 구입하고 고를 때 서로를 생각했던 의미들이 놓여있었다.
그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신혼을 시작했는지. 남편이 나를 위해 형편안에서 최선을 다해 골라준 전세집. 내가 처음 적응을 못해 휴가를 많이 쓰며 같이 있어준 시간들.
마치 어떤 견디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난 그 사건의 현장에서 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좋은 기억도 결국은 모두 아픈 기억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 기억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게 싫어 부여잡는다. 기어이 생각해내고야 만다.
남편 회사에 처리할 것이 있어 사망신고를 이르게 냈다. 사실 한달쯤 뒤에 내고 싶었는데.. 각종 세금과 재산 정리 그리고 나의 앞으로를 결정할 시간을 벌어야했고, 남편 회사에도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사망신고를 내던 날. 내가 내 손과 입으로 이 일을 요청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단순한 서류 일인데 남편을 내가 사회에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게 그게 꼭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게 더 속이 상했다.
사망 신고를 내고 집에 돌아와 온 몸이 아파 누웠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사망 신고 후 가족관계증명서에 남편의 사망 사실이 표기 되야 각종 은행일 처리나 서류 발급 등의 일처리가 가능해진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구 구청은 최소 10일 이상 사망 여부가 반영되는데 걸린다 했다.
그래서 좀 불편해진 일도 있지만. 정부 시스템에서 남편을 신중히 대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켠으로는 안도했다. 적어도 10일을 소요해서 내 남편의 사회적 흔적을 신중히 지워주는 것만 같았다.
시어머님이 약 9개월전쯤 돌아가셔서 나에게 의도치 않게 남편의 어린 시절 물품 정리마저 내 몫이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못내 마음이 아파 정리하지 못한 아버님과 어머님의 유품도 정리하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사진, 상장, 휴대폰, 기타 중요 문서 등등- 남편의 백일 사진부터 현재까지의 것들을 정리하는데, 남편의 인생을 정리하는 것만 같아서 계속 눈물이 나는 버거운 일이었다.
어린시절 남편은 어떤 소년이었을까. 이렇게 밝고 명랑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커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군대를 가고, 대학 졸업 학사모를 쓰고, 회사에 다니고,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종국에 나를 만나 결혼하고, 부모님을 앞서 보내고, 본인 마저 췌장암 투병을 하다 하늘에 간 그 인생.
그 순간순간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찬란한 그 순간들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정말 혼자가 되서 세상을 떠나면 누가 나의 삶의 의미를 내 삶의 흔적을 단 5분이라도 돌아보아줄까. 그런 마음도 들었다.
원스탑 상속조회 서비스를 신청했다. 뭘 봐야하는지 몰라서 그냥 다 조회해달라고 체크를 했더니 계속 여기저기서 문자와 톡이 온다. 남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저렇습니다-
문자를 받을 때 마다 남편의 죽음이 복기 된다. 보고 순간 멈칫하고 또 일상에 온다.
카드사니 통신사니 관리비 자동이체 계좌니 등등에 전화를 할 때마다 어김없이 용건을 말해야 한다. '남편이 사망해서요-제가 잘 몰라서요-' 내 입으로 또 사망 사실을 반복해 말한다.
남편이 세상을 뜨기 3-4일전에 신용카드사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어렵게 통화해서 부탁한게 있었는데 그게 중간에 배송지 문제가 생겼었다.
납골당 다녀와서 2일째 되던 날, 카드사에서 전화달라는 문자를 줘서 전화 했는데.. 남편 사망 얘기를 듣자 사망사실이 반영된 서류들을 줘야 상담이 된다고 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금융사의 확인 작업은 이해하고도 남으나 아주 단순한 사실 확인인데- 거기에 남편의 사망 사실이 반영된 문서를 보내달라하니 거기서 눈물이 났다.
"제가요.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남편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전화를 해서 처리 했는데, 여기서 전화하라 해서 했는데 저한테 이런 일들을 부탁하시면 안되지 않나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상담 직원분이 확인 후 다시 연락 주겠다 했다. 30분쯤 흘렀을 때, 남편과 그 당시 통화한 직원이 전에 통화내역 녹음을 듣고 직접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그리고 간단히 해결해주었다.
전화 말미에 그 분이 산소호흡기를 차고 어렵게 말한 남편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남편을 애도하며 눈물을 삼키며 상담을 종료해주셨다.
잘 모르는 분이고 잠시 통화한 카드사 상담 직원분 이지만 감사했다. 나와 남편의 슬픔을 헤아려 준것 같아서 잠깐의 통화에서 그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상담 직원들은 통상의 절차를 말하거나 아니면 그냥 이런일 흔하다는 듯 귀찮다는 듯이 판에 박힌 말투를 사용했다. 가끔 남편의 생년월일을 듣고 그 때부터 세상을 뜨기에 이른 나이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바꿔서 응대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흔적을 지우는 일에는 이런 부수적인 감정의 일들이 따라붙었다.
나는 남편의 흔적과 공존하고 싶다. 내 평생 지울 수 없는 일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으로 그 부피를 줄이고, 지워버려 속상한 일이 생기지 않을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되는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남편이 늘 뿌리던 향수가 있었다. 백화점에 가서 대용량을 샀다. 한동안 내 향수와 남편의 향수를 교차로 뿌리며 남편을 향으로 기억하고 남기려 한다.
늘 시시콜콜 대화하고 톡하고- 대화를 안해도 그 자리에 늘 있던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그립다. 엘레베이터에서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부부들을 보면서 나도 그랬는데.. 싶어 속이 상한다.
흔적은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무게가 있다. 나는 지금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는 흔적의 공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