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순 (Feat. 일드 언내추럴)
모순되는 생각들 사이에서..
예전에 보았던 일본드라마 언내추럴(Unnatural)을 다시 보고 있다.
여기서 '언내추럴'은 부자연사를 의미한다. 예쁜 여배우 이시하라 사토미가 법의학자로 나와 주연을 맡고 있다. 처음에 볼 때는 법의학자(시체를 부검하는 의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가 나오고, 여러 사건들을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워 재미있게 봤다.
요즘에 보는 언내추럴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과 그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들. 드라마에 나오는 대표적인 법의학자가 2명인데, 둘 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중 나카도 케이(이우라 아라타가 연기함)라는 법의학자는 살해당한 연인이 있었는데, 그 연인의 죽음의 진실을 놓고 드라마 처음에서 끝까지 씨름한다.
그 사람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사를 정확히 옮길 수는 없지만, 인상적인 내용은 '끝까지 답을 알지 못하는 영원한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게 남겨진 자'라는 것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한다'였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과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고찰이 나오는데- 내가 남편을 보내놓고 나니 그 하나하나가 그렇게 마음에 와닿아 한번쯤 더 내 삶을 더 생각하게 하고 있다.
사람은 마음에 양쪽의 생각을 하고 산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라고 단순하게 구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 뒤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의 책임은 어쨌든 자신이 지게 되어있다.
요새는 여러 일들이 있어서 꽤 스트레스를 받아서 뭘 먹지를 못한다. 예전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나 장으로 많이 갔는데, 요새는 그 정도가 심해져서 밖에 화장실이 안전히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먹는 게 겁이 난다.
그 여러 일들은 알아볼 것도 많고, 하나하나가 다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것들은 내가 풀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는 보통 선택을 빠르게 하고 행동에 옮기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 많기도 하고, 내 안에 생각들이 정리가 안돼서 그렇기도 하다.
예를 하나 들면, 집에 가구들이 2인용인데, 이 가구들을 계속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도 고민이다. 그에 따라 이사도 결정해야 하고, 이사에 따르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고, 이사 갈 집의 평수와 조건도 결정해야 한다.
남편과 함께 사는 삶만 생각해 보았어서 인지- 내가 나 혼자 살 때는 뭘 원했는지, 원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고민을 해보아도 난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계속 모르고 있다. 이제는 내가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하는데, 뭘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선택하고 싶지 않은 일들 앞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기분이다. 선택을 미룰수록 시간은 흘러가고 돈은 그냥 나가고 있다.
이게 단순한 쇼핑이라면, 봄옷을 사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가보니 사고 싶은 옷이 없는 것이다. 이럴 땐, 누가 무엇을 골라줘도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냥 안 사고 있는 게 돈도 아끼고 나도 편할 것 같다.
근데, 지금은 단순 쇼핑의 문제가 아닌데, 여러 가지가 같이 엉켜서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된 것 같다. 엉킨 목걸이 줄을 보는 기분이기도 하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우선 공부도 하고, 알아도 보고, 매일매일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고 있다. 그게 현재의 상황이다.
제일 나쁜 생각은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인생에 너무 행복했던 걸 빼앗겼다.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그걸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흔적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무미건조하고 아무 기쁨이 없다.
너무 극단적이지만, 한 달 동안 변하지 않는 생각엔 저 생각이 있다. 모두가 행복해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모두들 말하고, 소확행을 누리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서 남아있는 삶에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내가 기쁘지 않다고 살지 못할 건 아닌 것 같다.
생각의 찌꺼기들이 날아가버리면,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조금 더 힘들어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브런치스토리의 응원하기 기능을 부여했다. 보고 그냥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사실 응원하기는 그 글이 책으로 출판될 정도로 희망적이어야 혹은 공감이 되어야, 혹은 매력적이어야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유용한 정보를 담은 것도 아니고, 내 넋두리 담은 글에 꼭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살아야 해서 솔직하게 돈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냥 오픈했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니다. 동정심에 기반한 돈을 받는 건 참 나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걸로 어떤 종류든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금방 기능을 없앨 생각이다. 응원하기 기능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오픈해 놓고서도 여러 모순된 생각들을 하고 있다.
모순되는 여러 생각들이 내 안에 있다. 솔직하게 다 쓰면 너무 눈물이 날 것 같고, 내 자신이 한심해도 보일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글을 쓸 때는 모순되는 그 생각들을 털어보려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쓰기의 걸음이 멈춰졌다. 그 생각들은 지금까지는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듯하다.
얼마 전에 남편 납골당에 다녀왔다. 납골당 입구에 요새 이상기후 때문인지 늦은 목련이 피어있었다. 우리 동네도 목련이 때늦게 피었다 졌다. 보통 목련이 나오고 진달래나 철쭉, 벚꽃이 보였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 모든 게 동시다발로 있었다.
남편은 세상을 뜨기 며칠 전 나에게 뜬금없이 목련나무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때 수업하던 어떤 교수님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다 그 강의실 옆에서 바라본 목련이 예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납골당 주변에 핀 때늦은 목련을 보며, 남편 생각이 났다. 남편은 자신의 유골함이 있는 곳에 핀 이 목련을 알까. 천국에도 목련이 필까. 그곳에서 목련은 지지 않고 사시사철 피어있을까. 남편이 그 목련을 보고 나를 기억해 줄까.
이제 목련을 보며 남편을 내가 기억하는 이 세상이 나에게는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