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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un 08. 2024

10. 머그컵에 대한 단상

나에게 가끔 마음에 단정한 기쁨을 주는 머그컵 사진들

예전에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스*벅스 시티 머그를 모으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내 발이 닿은 곳의 머그컵을 모아서 기념하는 게 좋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곳의 머그컵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나서 흐뭇하곤 했다.


그 브랜드의 시티 머그가 나오기 전에는 그 지역의 특징이 새겨진 머그컵을 사 오곤 했다. 이런 취미의 시작은 처음 간 해외여행에서 시작됐다.


예전엔 배낭 지고 간다고 해서 배낭여행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여행사 패키지 여행과 자유 여행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 같다. 실제 그때는 딱 가는 비행기 값만 가지고 가서 길거리서 자기도 하는 사람도 실제로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지금 생각하면, 민폐이자 대책 없는 위험이지만- 그때는 그게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이 덜 발달해서 론리 플래닛 등의 여행 책자를 가지고 갔다. 종이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기도 했다.


민박 같은 데서 자게 되면, 밤에는 다들 맥주 한 캔이나 아껴둔(?) 다른 나라에서 산 잎담배 만드는 수제 기구 같은 걸 가져와서 스스로 만 담배를 나눠주며 크게 둘러앉아 여행 중의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나눴다.


중에는 이렇게 만난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들도 꽤 됐다. 어쨌든...


처음 간 파리에서 맥도드에서 특정 햄버거를 먹으면 머그컵을 주었다. 그때는 프랑스 사람들은 자국 언어에 자부심이 커서 외국인에게 절대 영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던 때이기도 했다.


프랑스어를 1도 못하는 나와 친구는 맥도드에서 단지 햄버거를 시켰는데 갑자기 머그컵이 따라붙었다. 그 머그컵이 깨질까 봐 신문지와 옷에 둘둘 말아 집에 가져왔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그렇게 여행지 머그컵 수집이 시작되었다. 그 수집을 멈추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먼저 하나는- 일본에서 사 온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이 버드나무 가지가 내려온 다리를 건너는 그림이 있는 머그가 있었다.


이 머그는 뜨거운 물을 부어야만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 매력에 아끼던 컵인데, 설거지하다 깨고 말았다. 갑자기 부질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속도 상하고. 그때 그 수집의 욕구를 반 절 잃었다.


두 번째는 나름대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며 살펴보니 너무 많은 머그가 있었다. 머그를 위해 장식장을 설치하고 싶지도 않았고, 정말 사용하는 머그는 한정된 수라는 걸 깨달은 다음이었다.


보다 보면 옷, 가방, 신발, 향수 등.. 이 아무리 많아도 저절로 손이 가는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예뻐해 주려면 잘 관리하고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내 얼굴 씻기도 귀찮은 게으름뱅이인 나에게 그건..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내키 전에는 컵에 가는 손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그리고 모은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분양 보내거나 중고 거래로 정리했다.

 

물이나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나에게 머그컵은 생활의 가족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말도 못 하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평소 손을 가장 많이 타는 물건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컵을 하나 들이게 되면 신중을 하게 된다. 질리는 디자인인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나 느낌을 담고 있는지, 집에 다른 물건들과 놓았을 때 이질감은 없는지, 용도와 가격은 어떠한 지 등등..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마음이 편해지는 컵인가가 있다. 그렇다고 그 컵이 나를 우아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싫다. 머그컵 하나를 놓고 오만가지 고민을 해서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다.


몇 년 전부터는 하얀색 계열의 도기 컵이나 접시를 좋아하고 있다. 같은 하얀색이지만 미색이 도는 아이보리나 베이지 느낌도 좋고, 약간 테두리나 모양에 멋을 준 것도 좋다.


그리고 집에 들여놓지는 않았지만, 터퀴스 블루(Turquoise blue)의 티머그컵 세트도 마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오면 너무 튈 것 같아 들이지는 않았다.


터퀴스 블루 색 티머그잔은 예전 인기 미드 멘탈리스트의 포스터에 나오는 머그였다. 친한 언니집에 있는 걸 보고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얼마 전 그 언니와 만난 카페에서도 나왔다. 언니는 그 컵과 인연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잠깐 바라본 주방 풍경에 나의 그 시리즈(?) 컵이 놓여있는 풍경이 "그냥" 나에게 안심과 "단정한 기쁨"을 줬다. 그걸 보고 글을 그냥 쓰고 싶어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따라 식탁에 놓아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이 밝아 보이고 잘생겨 보인다. 오전에 내린 비를 머금고 점점 무더워 가는 태양의 열기를 영글게 먹은 그 햇빛을 받아서일까.


남편을 내가 매일 울더라도 매일 바라보겠노라고 기억하겠노라고 다시 생각한다. 참 나를 행복하게 해 준 사람이니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늘 애용하던 머그들도 잘 간직하고 있다. 남편이 여러 머그 중 선택한 그 머그들에는 남편의 생각이 담겨 있고, 남편과 함께한 여러 순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늘 나에게 단정한 기쁨을 준 머그컵 주방 사진을 올려본다. 그리고. 멘탈리스트의 그 머그 사진도 올려본다.


머그컵은 그렇게 오늘도 나와 함께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덧붙임. 제목에 있는 컵 사진도- 삿포로에 있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레스토랑 주인 부부가 내가 방문하면 늘 내어주는 커피잔.


하얀 잔의 끝이 꽃잎모양이고, 손잡이에는 앙증맞은 작은 페일핑크(Pale pink) 장미가 있어 감탄!했는데, 그 이후로 챙겨주신다^^ - 늘 감사하다.


모니터 화면에 따라 장미가 보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단정한 기쁨을 준 풍경. 사진이 내 마음같이 멋지게 나오진 않았지만..^^


미드 멘탈리스트 포스터 중 하나. 멘탈리스트는 시즌 1의 1편부터 멋대로 피해자의 집에서 홍차를 예쁜 컵에 내려마시는 제인의 모습이 처음 도입부에 나온다. (출처는 인터넷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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