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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Sep 26. 2024

복싱 일기_1달 차

초보 복싱러의 기록

누군가 나에게 "복싱을 어떻게 하게 됐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죽을 것 같아서요. 샌드백 한 번만 면 살 것만 같아서요."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복싱을 시작했다. 격투기에 아무 관심도 없고, 누구를 때리고 싶지도 않고, 겁도 많고, 몸도 비실비실하고, 저질체력에, 약간은 무릎 통증이 있는 숨쉬기 운동만 하던 40대 초반의 내가 갑자기 복싱장을 갔다.


올여름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전 처음 겪는 길고 힘든 더위였다. 우스개 소리로 70-80대 분들 앞에서 "저 이렇게 안 끝나는 더운 여름은 처음이에요."라는 말을 하면- 그분들도 나도 태어나 처음 겪는다는 답을 한다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진심 징글맞은 여름이었다.


날씨에 예민한 나는 기분도 같이 움직였는데, 실내에서 나름 적정 온도로 있어도, 온 대기를 덮고 있는 한반도의 여름 기온은 기어코 내 정신력과 마음을 같이 움직였다.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 기복을 겪어야 했고, 그와 동시에 아직 남편의 빈자리는 나에게 설명되지 않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남겨두었다.        


이 와중에 나는 나름대로 2024 파리 올림픽을 챙겨보았다. 챙겨본 이유는 그러했다. 남편과 결혼 3개월 차에 파리를 갔었는데, 코로나 때 도쿄 올림픽 폐막에서 하던 파리 올림픽 예고 장면을 보며, 우리 꼭 같이 파리 올림픽을 보며, 그때 추억을 다시 되짚어 보자 했던 것이다.


남편과 같이 유람선을 탔던 센 강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에펠탑이 보였고, 우리가 같이 걸었던 거리의 풍경이 올림픽경기 중계로 TV화면속에서 채워졌다. 파리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날, 갑자기 지하철이 구간 파업을 해서 타야 할 기차 시간을 맞출 길이 없자,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쉬지 않고 파리 거리를 30분 넘게 달렸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남편이-  30분 넘게 서로 대화도 없이, 핸드폰 구글 지도를 보며 나를 끌고 파리 거리를 뛰고 나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 파리에 와서 제대로 더 보고 싶다 했었다. 기차에서 차오르는 숨을 고르던 기억이, 그리고 둘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그렇게 파리의 공기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제대로 복싱 경기를 보지도 않았는데, 우리나라 임애지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번 복싱은 성별논란으로 시끄럽기도 했었다. 임애지 선수 뉴스를 듣는데, 그때 샌드백과 글러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무렵 보던 드라마 두 편에서 복싱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왔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복싱장에 가볼까.. 정도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떤 일이 생겼고, 그 일로 인해 나는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눈물과 씨름하게 되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신경 안정제를 최대치로 먹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40대도 할 수 있나요?" "예, 가능합니다." 급히 검색으로 동네 복싱장을 찾았고, 그 복싱장이 평이 괜찮길래 전화를 해서 내가 할 수 있는지 묻고는 집에 있는 옷 중 체육복으로 할 만한걸 대충 둘러 입고 복싱장에 갔다.


우느라 정신도 없었고, 먹을 걸 챙길 마음의 여유도, 뭘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빈 속에 그대로 복싱장에 진입한 나는 줄넘기라는 관문을 만났다.


몇 십 년 전에 뛰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줄넘기를 만났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름 깡총깡총 뛰던 소싯적이 있는데, 정말 줄넘기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줄넘기하는 시범을 보고 뛰었는데, 정말 이상하게 뜀뛰기를 하며, 온 전신의 몸무게가 다 싣고 뛰었다 내려오는 나 자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장님이 다칠 것 같다고 스텝 박스를 가져왔다. 스텝 박스에서 하는 몇 가지 동작들을 듣고 시작했는데, 맨 마지막 코스인 양발로 뜀뛰고 내리기가 되지 않았다. 뭔가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뛰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 단계를 패스하고 스텝박스로 기초 운동을 했다. 간신히 마쳤을 무렵 머리가 핑글 돌았고, 세상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쓰러질 것 같았다. 복싱 기본기를 가르쳐 주려던 관장님에게 도저히 안될 것 같다고 쉬었다 집에 가겠다고 했다.


복싱장을 나섰다. 강렬한 햇빛과 무더위가 훅 나를 감쌌다. 5분 거리의 집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집에는 나 혼자인데, 5분 거리인데..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별 생각을 다했다. 길바닥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서 간신히 집에 왔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길바닥에서 쓰러져 죽을 뻔했다.


복싱을 한 것도 아니고, 기초 운동만 하고 말이다. 그 기초 운동도 얼마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땀을 그다지 흘리는 체질이 아닌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땀이 모든 땀구멍에서 다 발산되었다. 심지어 생전 처음으로 발바닥에서 땀이 흥건히 찼다. 불현듯 그렇게 쓰러질뻔하다 나오니, 뭔가 마음이 상쾌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나를 끝까지 체력적으로 몰아붙였어야 그 눈물은 끝나고, 그 마음의 힘듦은 덜어내어 지는 것이었던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다음 출석일에는 집에서 음식을 간단히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수분 보충 음료도 챙겨갔다. 그제야 스텝박스를 마치고 온전히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복싱은 상대를 때리는 폭력적인 운동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근력 운동인 줄 알았다. 얼마나 아무 정보 없이 복싱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싱은 유명한 유산소 운동이었다.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스텝박스나 줄넘기를 왜 하는지 몰랐다. 이유는 복싱은 계속 뛰어야 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몸을 가볍게 놀리면서 기본적인 타격 자세를 갖추고, 그 후 실전 스파링에 가면 상대를 파악하여 전술을 펼치며 사각 링 위를 누벼야 하는 운동이었다.


제일 첫 코칭을 받던 날 나는 그걸 알게 되었다. 복싱은 그런 운동이라는 걸.


복싱장은 복싱장마다 특징이 있다. 내가 다니는 복싱장은 쿨하면서도 운동하는 사람들 특유의 밝음이 있는 곳이었다. 쏘 쿨이었다.


사실 필라테스나 내지는 좀 유명한 운동센터는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운동을 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몸매를 가지고 훌륭한 기량을 이미 선보이고 있는 그러한 곳들이 많았다.


이 복싱장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생활 체육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곳이었다. 남녀노소가 다 골고루 배치되어 있고, 복싱이라는 운동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자유롭고, 서로 적당히 예의를 갖춘 곳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코치님 코칭 시간 대에 가면 1:1로 늘 봐준다. 그래서 어느 시간에 꼭 가야 한다도 없다.


복싱장은 사람들이 블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통 아래위 반팔, 반바지 블랙을 많이들 입는데, 나는 반바지로 하면 부실한 다리가 아슬해 보일까 봐 복싱을 하는데도 요가복 사이트에서 트레이닝 복을 골라서 혼자 화려한 색상을 뽐내며 다니고 있다. 땀이 너무 나서 다이소 헤어밴드도 쓴다.


나의 자유로운 의상에 태클이 들어오지 않아 다행이다. 부끄러움은 40대에 접어들면서 편리함과 실용성에  패션 감각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가격 맞고 나에게 편리하고, 예의가 아니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오후 시간대에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와서 주로 일반 성인이 많은 오전 시간대가 좀 더 나에게는 맞는다. 그리고 너무 각 맞추고 배우지 않아서, 복싱을 진도대로 스텝 바이 스텝으로 배우고 있다. 가끔 너무 잘하는 분들을 보면 구경하기도 한다.


거울을 보며 밑에 그어진 테이프 선에 따라 스텝을 밟으며 자세 연습을 하다 보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그 유명한 무하마드 알리 선수의 말이 머릿속에 그냥 와서 박힌다. "그래, 복싱은 그런 거였어."


스트레이트 기본자세를 배우고 지금은 레프트 훅을 배우고 있다. 나는 매일 가지는 않아서 진도가 느린 편이지만, 나는 나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정확한 자세를 습득하자 생각한다. 여러 기술을 정확히 잘 체득한 그때쯤엔 파워를 실어 주먹을 날리면 위협적 이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포효하는 40대 여성이 될 수도 있다?!


관장님이 미트연습을 시켜주며 사각링에서 쉬지 않고 대략 3분을 뛰다 보면 중간에 쉬고 싶은 순간이 계속 찾아온다. 고작 3분인데, 그 사각링에서 해야 하는 목표는 늘 있다.


둘째 날 샌드백을 치게 되었는데, 생각만큼 후련하지는 않았다. 샌드백은 묵직했고, 내 펀치로는 다른 사람들의 시원하면서 경력이 쌓인 그 펀치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샌드백을 치는 매력은 따로 있다. 쳐도 쳐도 내 앞에 있는 샌드백을 가끔씩 반동을 잠재우느라 안고 있으면 나는 주먹이나 싸움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냥 그 샌드백도 사랑스럽(?)다.


유튜브로 매우 가끔 복싱 내용을 본다. 유튜브로 배우 마동석이 복싱애호가이면서, 범죄 도시에서 복싱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체험한 만큼, 세상이 넓어지나 보다.


가끔 스파링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여자들도 망설이지 않고 한다. 상대를 포기하지 않고 일정 간격 안에서 계속해서 펀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때리고자 하는 목표물에 대한 집착이 생각보다 적은 걸까, 겁이 많아 회피하는 걸까 생각도 든다.


하다 보니 재미가 조금씩 붙어 좀 더 수강기간을 늘렸다. 복싱을 하다 보니, 뭔가 바른 자세가 생기고, 복싱을 하는 동안 잡념이 사라져서 정신이 좀 더 건강해지고, 체력이 조금씩 생기는 효과를 보고 있다.


남편이 하늘에서 날 본다면, 정말 의아해할 것만 같다. 아마 남편의 아내인 내가 복싱을 하는 건 남편 살아생전에 생각해 본 일이 아닐 것이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저 펀치 훈련을 하면서 남편에게 나 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나 혼자 잘 일어설 거라고. 마음속으로 늘 말하고 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말이다. 췩췩~


*** 너무 오래간만에 글을 쓰니 글 쓰는 감각도 무뎌지고, 요새 독서도 많이 못해서 표현력도 떨어졌고, 꽤 반성이 많이 되는 글이지만, 한 번은 복싱 얘기를 쓰고 싶어 남겨 봅니다. 당분간은 하는 게 있어서 글을 예전 만큼 쓰지 못하지만, 소설 쓰기는, 글쓰기는 늘 마음속에 담아둔 저의 하고 싶은 일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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