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기술...
볼을 끝까지 보고 치라고 합니다...
열여덟 번째 절기인 상강(霜降)과 입동(立冬) 사이의 새벽녘에 가을비가 내렸나 봅니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비 끝이라 그런지 무척 흐리고 어두운 하늘입니다.
비가 오면 클레이 코트는 운동을 할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도 비가 오나? 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비는 멎었으나 젖은 도로가 시커멓습니다. 흐린 하늘에 쌀쌀해질 날씨에 젖은 코트가 쉬이 마르지 않을 거 같아서 마음까지도 흐릿하게 휴일의 오전을 보냈습니다. 이 상태가 테니스 폐인의 마음입니다.
오후엔 예식장에 다녀온 후 혹여 하는 마음에 테니스장으로 갔습니다. 코치 선생님이 코트 주변에 떨어진 낙엽 쓰느라고 연신 비질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흐린 마음이 확 가십니다. ㅎㅎ
코트 정리 후 몸 풀기 랠리를 하는데 아직 덜 마른 코트 바닥 면에서 황토 색으로 묻어 날아오는 볼에 타구감이 떨어져 몸까지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코트를 정리하고 한 게임할 생각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적당히 몸을 푼 후 한 게임할 상대는 다음 주에 있을 전국대회 혼복 시합에 나가는 팀이었는데 여자분은 포핸드 송곳 스트로크가 일품인, 정구 선수 출신의 실력자고 남자분은 전엔 파워만 있었는데 이젠 강약 조절 기능을 갖춘 왼손잡이 동네 고수분으로 그 혼복 팀이 저와 코치 선생님이랑 페어로 연습 상대 좀 해 주십사 하고 정중하게 한 수 지도를 부탁하는 거였습니다.
'오호~ 한 수 지도라?' 좋은 연습이 되겠는데 하고서 지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되려, 저희 팀이 5-5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였고 패인은 첫 게임부터 끝까지 끌려가는 경기와 결정적일 때 저의 잦은 리턴 미스였습니다.
상대편 리드에서 게임 스코어 2-3, 서리 포리, 이런 상황에서 3-3 동점이나 듀스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조급증을 유발하게 했는지 네트 앞 전위의 동작을 의식하여 포칭을 피하려고 리턴 볼에 각도만 생각하고 볼은 보지 않음으로 정타가 되지 않아 잦은 에러가 나오자 나의 파트너이자 코치 선생님께서 한마디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서 볼을 끝까지 보고 치세요~!!!"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에러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여유를 갖자, 볼을 끝까지 보자...’
200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