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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준 바람소리 Dec 17. 2024

테니스는 내 삶의 일부...

파트너에게 부치는 편지...


dear 마이 파트너...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함께 게임을 했던 조 아무개 오래간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지만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코트를 누비고 계시지요?     


지난번에 저와 파트너 하여 아깝게 진 경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으리라 생각하면서 저 역시 석패라 그런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찬스에서 제가 했던 에러의 장면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결정적인 순간 터지는 어이없는 에러에 한심한 듯한 표정 애써 감추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당신의 서늘한 눈빛의 인상이 참으로 오래 남습니다.     


차라리 그때 제게 한 소리 하시지 그럴 때는 잔소리 듣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래도 그런 게임을 하면서 배움이 컸기에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나름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몇 자 적어봅니다.

     

테니스...

입문 후 점점 그 매력에 빠져서 미친 듯이 코트에 들락거릴 때에는(지금도 여전하지만...) 집에서 "테니스장 가면 밥이 나와 죽이 나와~ 점빵에 신경 좀 써~!!!" 통상적으로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영장에서 귀 막고, 코 막고 물속에다 머리통 넣다 뺏다 평형으로 물살 가르듯 거센 잔소리의 물결을 헤치면서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코트에 나선답니다.    

 

코트에서 친선게임이든 타이틀이 걸린 게임이든 제가 임하는 자세는 고수분과의 게임은 챙겨주는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고, 한 수 배울 생각으로 마음은 고무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기대되고, 혹여 실수할까 봐 늘 긴장되고 그런답니다.   

  

그날...

오오~!!! 치킨에 생맥주가 걸린 내기 게임에 제가 당첨이 되더군요. '위험이 클수록 값진 교훈을 얻는다!!!'라는 생각과 파트너에게 금전적인 짐을 주지 않으려고 지더라도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코트에 들어섰었죠...     


경기 전 긴장과 동시에 느껴지는 야릇한 흥분이 저의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플레이볼~!!"과 함께 땀이 배일 듯한 라켓의 그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게임 속으로 빠져듭니다.     


양 팀 타이트한 공수 전환으로 거칠어진 호흡 속에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 훔치는 팽팽한 접전...     

 

팡팡팡------------------


게임 스코어 2-1 리드로 포리-피프틴에서 제 머리 위로 너무도 쉬운 찬스 볼이 떴는데 그만 퍽~!!! 소리와 함께 네트에 그대로 꼬라박는 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게임스코어를 3-1로 만들 수 있는 찬스에서 오히려 2-2 타이를 허용, 어쩌면 첫 번째 고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포인트였는데 볼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은 계기가 돼버렸습니다.    

 

이후... 당신은 제 뒤에서, 곁에서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면서 오로지 "my ball~!!!"만 외치면서 어지간한 볼 처리를 다했고, 죄심(罪心) 가득한 저는 제 서브를 넣을 때와 상대 서브 리턴 할 때 외엔 청룡언월도가 된 무거운 라켓만 들고 네트 앞에서 뻣뻣한 어깨 경직된 두 다리로 서 있는 노란 들녘의 허수아비가 돼버렸습니다.

     

'아~ 이게 뭐냐...'

'내가 집의 잔소리까지 극복하고 나왔는데 여기에서 간이 극심히도 나빠지는 이런 상황을 겪는구나...' '배 깔고 누워 티브이나 볼 걸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곳에서 이런 수모를?' 스스로에 대한 화가 잔뜩 생겼습니다.

     

당시 생각을 하면 라켓을 영원히 놓고 싶었었지만,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운동인지라 받았던 수모나 서러움은 다시 까맣게 잊고서 또다시 테니스장 문을 "끼익~!!" 열고 들어가는 저를 보면서 내가 참으로 미련스러운 곰이 아닌가 한답니다.     


더 잘 아시겠지만, 복식경기에서 본인의 실력이 미천하여 찬스 볼에 터지는 에러 말고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잘하려고 하다 보니 무리가 따르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데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 말았네요 꼭 이기고 싶어 하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거듭 송구한 마음 전합니다.  

   

코트에 저 같은 사람이 아직 많습니다. 우리들이 테니스 복식경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급자의 살가운 조언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네요...     


몰라서 취했던 동작이 잘못되었다면 그릇된 점을 지적하여 주신다면 달갑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하더라도 가상히 여겨주시고 가르침이 하수에게 유익하고 전력의 손실을 막기 위한 방편이 된다면 부디 외면하지 마시고 선의의 충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옛말에... 良藥苦於口而利於病이요 忠言逆耳利於行이라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하였으니... 애정 담긴 조언은 싫은 소리가 아니라 은혜 입은 제자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모쪼록... 운 날씨에 옥체 보존 잘하시고

늘 코트를 빛내주시는 분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199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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