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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Mar 13. 2023

누룽지 사용 설명서

반려견과 함께 하는 전원 라이프

  누룽지는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누룽지에게 있어서 거짓 공약 금지어가 있다. 바로 산책이라는 말이다.

산책 갈 것도 아니면서 그냥 장난 삼아 누룽지한테 "누룽지, 산책 가자." 하면 계속 산책 갈 때까지 낑낑대면서 짖어댄다. 마지못해서 산책을 갔다 오면 짖어대는 소리도 쏙 들어간다.


  평소의 누룽지는 비단결 심성인데 산책만큼은 절대 양보가 없고 뒤로 미루는 일이 절대절대 없다. 산책이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에 당장 나가야 한다. 손바닥에 음식을 올려서 누룽지에게 내밀면 누룽지는 혹시나 자기가 음식 먹다가 내 손을 물게 될까 봐 손 위에 올려진 음식을 일부러 안 먹는다. 그냥 땅바닥에 주거나 자기 밥그릇에 담아주면 먹는다. 그 정도로 비단결 심성을 가진 녀석인데 산책하자고 해 놓고 안 나가면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 되도록 짖어댄다. 왜 안 나가냐고....

그래서 누룽지에게는 함부로 절대로 절대로 산책 가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룽지는 뼈다귀를 물고 있을 때는 절대 접근 금지다. 자기가 갖고 있는 뼈다귀 뺏길까 봐 매우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순둥이고 비단결인 누룽지이지만 뼈다귀 앞에서는 절대로 양보가 없다.  한 번은 누룽지에게 다가가서 더 큰 뼈다귀로 바꿔 주려고 했는데 누룽지는 자기 것을 내가 뺏으려고 하는 줄 알고 내 손목을 물어서 피가 난 적이 있었다. 누룽지의 이빨로 인정사정없이 물었다면 내 손모가지는 동강이 났을 테지만 그래도 경고성으로 가볍게 물어서  약간의 피만 흘리고 상처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기 것에 대한 보호본능은 강한 것 같다.

자기도 내 손목을 물었던 것이 미안했는지 그 일이 있은 후로 한동안 누룽지가 나를 보는 모습에서 미안해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나는 누룽지에게 다가가서 "괜찮아, 크게 안 다쳤으니까 괜찮다."라고 말을 해줬다. 나도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누룽지 성격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에 뼈다귀 갖고 있을 때는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는 별 탈 없이 전처럼 잘 지내고 있다.


  우리 누룽지는 생각할수록 반전매력덩이 같다. 순둥이지만 산책과 뼈다귀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평상시는 쭈글쭈글한 외모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선사해 주는 착한 누룽지다. 좀 전에 자꾸만 짖어대서 거실에서 마당을 향해 "누룽지 조용히 해, 그만 짖어"라고 하니까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금세 짖는 것을 멈춘다. 이 녀석은 진짜로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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