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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Feb 26. 2023

"마미, 지금 뭐 해?"  "누룽지 끓여."

반려견과 함께 하는 전원 라이프

  오늘은 토요일이다. 평소에는 학교에 늦지 않도록 아이를 깨우는 일이며, 어머니의 노치원(노인주간 돌봄 센터), 남편의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을 맞이하겠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가족 모두가 집에 있으니까 아침을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밤 새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마당에 있는 우리 집 개들이 추위에 떨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져서 뭔가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끈한 것을 준비해 주고 싶었다. 아침밥 지을 때 받아 두었던 살뜨물을 불에 올려서 눌은밥 몇 조각을 떼 넣어서 누룽지 숭늉을 끓이고 있는데 딸아이가 내 옆에 와서 "마미, 지금 뭐 해?"하고 묻길래 "누룽지 끓여."라고 대답했더니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딸아이가 '꺄악 ~~~ 불쌍한 누룽지!'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두 마리의 개가 있는데 한 마리는 이름이 누룽지고 다른 한 마리는 대장이다. 누룽지는 털 색깔이 누렇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쭈글이로 외모가 무섭다기보다는 쳐다보는 것 만으로 웃음이 절로 나게 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줘서 구수한 맛이 나는 누룽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딸아이가 이런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장이는 털이 검은색인데 대장처럼 용감하고 씩씩하라고 지어줬는데 우리 집 개들 중에 덩치만 제일 크지 일등 가는 쫄보다.


  "누룽지를 끓인다고? 안 돼!" 하면서 내가 지금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은 우리 마당에 있는 개, 누룽지가 아닌 눌은밥이라는 것을 알면서 장난기 섞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바글바글 끓인 누룽지를 적당한 따뜻한 온도로 식혀서 물그릇에 부어줬더니 녀석이 밤새 웅크리고 있던 몸을 쭈욱 뻗으면서 기지개를 켜고는 제 물그릇에 가득 채워진 따뜻한 누룽지를 맛나게도 먹었다.


  누룽지는 자기네 주인과 실내에서 함께 생활하는 왕자님 개였다. 그 집에는 누룽지 외에  노견이 한 마리 있었는데 누룽가 태어나서 3~4개월 정도 아기 강아지로 호기심이 많을 때라 자꾸 노견에게 장난치고  귀찮게 하니까 노견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누룽지의 장난감, 이불 등 다양한 살림살이와 함께 누룽지를 우리에게 양보해 주게 된 것이다. 귀티가 흐르는 왕자님 신분이던 누룽지를 우리는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다 보니 완전 거지왕자님이 되었다. 처음 마당에 풀어놓았을 때는 낑낑거리고 밤새 불안해하면서 울부짖고 하더니 곧 적응을 잘했고, 어느덧 우리와 함께 산지 3년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바람 불고 날씨가 추운 겨울이면 전에 키우던 주인에게는 왕자님이었는데 우리 집에 와서는  거지왕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많이 짠해진다. 

나는 누룽지가 따끈한 물을 마시는 내도록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누룽지에게 다가가서 "누룽지야, 사랑한다. 많이 먹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하면서 누룽지를 쓰담쓰담해 주니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내게 엉덩이를 내밀면서 내 몸에 자신의 몸을 기분 좋게 비빈다. 마치, 누룽지도 나에게 '나도 주인을 사랑한다.'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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