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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Oct 25. 2023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1)

그리스 문화의 보고, 시칠리아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칠리아로 가라.”


영국의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더글라스 슬라덴Douglas Sladen의 말이다. 2022년 9월에 떠난 열흘 일정의 시칠리아 여행을 마칠 때쯤 이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아니, 시칠리아는 내게 충격이었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의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포에니 전쟁의 주무대였고, 마피아의 고향, 영화 <시네마 천국>, <대부>의 배경이라는 정도가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시칠리아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다.  


지난 25년 동안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서유럽 국가들 중 안 가본 데가 별로 없다. 핵심 플랜트설비를 생산하는 그 회사는 미국과 유럽에 30개가 넘는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모두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해외플랜트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은 이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한국책임자인 나는 해외 출장이 잦았다. 하지만 시칠리아는 공장이 아니라 지사조차 없어 갈 기회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매년 추석 다음날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함께 가는 세 부부가 있다. 친하고 마음이 잘 맞아 몇 해 동안 이어지고 있다. 그해 여행이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내년 행선지를 정하곤 하는데 이번은 시칠리아였다. 박사장님 부인이 꼭 시칠리아로 가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먼저 갔다 온 친구가 너무 좋아 꼭 가보라고 했단다. 마침 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최사장님, 전사장님 부부도 흔쾌히 동의해 수월하게 정해졌다. 코로나 몇 년 동안은 여행 가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곳을 여행지로 선택하든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는 특별했고 예기치 못한 감동을 우리에게 주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인들은 시칠리아에 선주 민족들을 내륙으로 몰아내고 해안을 따라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기원전 5세기 카르타고Carthago에 정복당하기 전까지 마그나 그라에키아Magna Graecia라고 불렸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는 그리스보다 더 많은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시칠리아에 있는 여러 개의 폴리스(Polis) 중 하나인 시라쿠사Siracusa는 한 때 아테나와의 전쟁에서 이길 만큼 그 세력이 막강했다. 그 당시의 유적은 그리스보다 온전하게, 더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반도 끝에 붙어 있는 섬이다. 지중해의 중심이면서 아프리카로 가는 길목이다. 고대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리스인들에 의해 전파된 인본주의 사상의 헬레니즘 문화는 시칠리아에 자유분방한 사상과 선진화된 정치, 철학, 문학, 과학 등이 여타의 유럽지역보다 먼저 꽃피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카르타고의 지배를 거쳐 기원전 3세기 시칠리아의 패권은 로마로 넘어간다. 이후 로마는 시칠리아를 북아프리카 정복의 교두보로 삼았다.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시칠리아도 다른 유럽국가들과 함께 교회, 즉 신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중세로 접어든다.


여러 번 지배자가 바뀌었던 격동적인 역사만큼이나 섬 곳곳에는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인간이 먼저냐, 신이 먼저냐’를 놓고 끊임없이 다툰 지난 3,000년의 유럽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그리스 시대 때 희곡, 연주 등을 상영했던 원형극장이 로마시대 때 맹수사냥이나 검투사들의 결투장인 투기장으로 개조된 곳이 많다. 대개의 그리스 원형극장은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위 대리석 기둥 사이가 확 트여 있어서 전망이 좋았다. 그런데 로마 시대 때 투기장으로 개조되면서 대리석 기둥 사이를 빨간 벽돌이나 시멘트와 돌로 막아 무대 뒤의 트인 공간을 없애 버렸다. 맹수가 뛰쳐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로마가 멸망한 후 이 투기장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현대에 들어 오케스트라 연주회나 오페라 공연으로 사용되는데 그리스 시대의 용도를 되찾은 셈이다.


로마시대 때 건축된 성당 중에는 그리스 신전을 개축한 것들이 있다. 대리석 기둥사이를 벽돌이나 시멘트 또는 돌로 막은 것 눈에 띈다면 로마시대 때 개축한 유적이다. 그런데 성당의 변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로마시대 이후에도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허물고 새로 짓는 대신 대부분 개축되었다. 따라서 성당은 그리스, 로마 양식부터, 비잔틴, 사라센, 로마네스크, 노르만, 고딕, 바로크 양식까지 모든 유럽의 건축양식이 망라되어 있다. 한 건물에 3,000년 동안의 유럽 역사가 퇴적 지층처럼 한 켜 한 켜 쌓여 있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시칠리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시칠리아 여정은 카타니아Catania 공항에 도착하면서 아래와 같은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시칠리아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지중해의 진주’라 불리는 동쪽의 타오르미나Taormina에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 북서쪽에 위치한 섬의 수도 팔레르모Palermo에서 열흘 간 일정이 끝난다.


Day 1: 카타니아 도착

Day 2: 에트나 Etna 화산 관람, 와이너리 투어

Day 3: 골프와 타오르미나 시내 워킹투어

Day 4: 대부 촬영지 사보카Savoca, 포르사 다그로Forza D’Agrò 투어

Day 5: 시라쿠사, 오르티지아Ortigia 투어

Day 6: 노토Noto 시내, 피아사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의 로만빌라 델카살레 Roman Villa del Casale 투어

Day 7: 포르테 베루다Forte Verdura 리조트에서 골프 및 휴식

Day 8: 아그리젠토Agrigento의 ‘신전들의 계곡Valley of The Temples’

Day 9: 마살라Marsala에서 와이너리 투어, 세게스타Segesta의 미완성 신전 관람

Day 10: 팔레르모 시내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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