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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Nov 10. 2023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4)

시칠리아 전통치즈 농장과 와이너리 투어

우리의 다음 방문지는 시칠리아 전통치즈를 만드는 곳이었다. 도착하고 보니 50마리 정도의 양을 치는 양치기 집이다. 양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 그런지 아니면 늙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양치기 개도 예전에 아일랜드에서 본만큼 민첩하지 않았다. 치즈를 만드는 곳은 우리나라 시골 부엌과 비슷했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에 얹는 솥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일정표를 보고 떠올렸던 그럴싸한 설비는 하나도 없다. 양 50마리로 생산하는 양이 많지 않아 그런지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치즈를 만들지도 않았다. 도구들을 보여주며 호텔에서 보았던 리코타 살라타Ricotta Salata 치즈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만 해준다. 

전통 치즈를 만드는 부엌과 양을 치는 양치기

우유나 양유에 응고제를 넣고 저온에서 가열하면 단백질 덩어리가 침전된다. 침전된 단백질을 잘게 부수어 계속 가열하면 한 층 더 응고되는데 이를 압착하면 치즈가 된다. 제조과정은 비교적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 간단해 보이는 과정에서 조금씩 공정이 바뀌면서 다양한 치즈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종류도 많고 만드는 법도 제각기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복잡한 설명들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데 양치기의 말을 가이드가 영어로 통역을 하니 더욱 알아듣기 힘들었다.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치즈의 종류는 크게 숙성과정을 거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종류가 있다. 우리가 맛본 리코타살라타 치즈는 숙성시키지 않은 것이다. 부엌에서 설명이 끝나자 밖에 있는 테이블에 차려 놓은 서너 가지 종류의 치즈를 시식했는데 숙성과정을 거친 치즈도 있었다. 주둥이가 넓은 병에 담은 화이트 와인을 따라 주는데 치즈도 와인도 호텔에서 먹은 것보다 맛이 투박했다.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순수에 가까운 맛이라고나 할까.

 

오후에는 와이너리 투어가 잡혀 있었는데 거기에서 늦은 점심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통 치즈 농장 투어를 마친 뒤 도착한 코타네라Cottanera 와이너리는 에트나 산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매니저가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한다. 실내 한편에는 와인 테스팅을 위한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로비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대한 자료와 장식품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스케일이 크고 세련된 보르도의 와이너리와는 대조적이다. 로비에서 매니저의 간단한 와이너리 소개가 있었다. 가족 소유의 와이너리라고 한다. 현관 반대편 벽에 조그만 창이 나 있는데 창 너머로 포도밭이 산경사면을 따라 펼쳐져 있고 멀리 에트나산 정상이 보인다. 밝은 햇살이 내려 쬐는 바깥의 풍경이 어두운 실내와 대비되어 마치 액자에 담긴 한 폭의 그림 같다. 

코타네라 와이너리 로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

와이너리 소개가 끝난 뒤 매니저와 함께 포도밭을 잠시 거닐며 이곳에서 재배하는 품종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레드와인은 에트나로소디오시Etna Rosso DOC, 바바잘레로소Barbazzale Rosso, 두종류가 있었는데 둘 다 토착품종인 네넬로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로 주로 만든다. 또 다른 토착 품종인 네넬로카푸치노Nerello Cappuccio 품종을 블랜딩하기도 한다고 한다. 화이트와인은 카리칸테Carricante로 만드는데 역시 토착품종이다. 내게 익숙한 샤도네이Chardonnay와 머스켓Muscat 품종도 재배하는데 스파클링 와인과 디저트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포도밭을 들러 본 뒤 양조장으로 들어가 이곳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와인 양조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양조과정은 여느 와이너리와 비슷하다. 레드 와인의 발효 과정은 적포도를 으깨는 것부터 시작되는데 으깨진 과즙, 껍질, 씨는 발효를 위해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로 옮겨진다. 포도껍질을 건져내지 않는 것은 발효 과정 중에 포도즙과 접촉하여 색, 탄닌 및 풍미 등의 화합물이 녹아 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발효과정은 포도 품종과 원하는 와인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약 10~15일이 소요된다. 이 시간 동안 포도 껍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효모는 포도당을 분해하여 알코올로 변화시키고 이산화탄소는 부산물로 생성된다. 이 이산화탄소 가스는 위로 빠져나가면서 탱크 상단까지 채워진 과즙 표면에 거품 층을 만든다. 발효 중 온도는 25-30°C 사이에서 세심하게 제어하는데 포도 껍질에서 풍미와 탄닌이 충분히 추출되도록 효모작용이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발효가 완료되면 숙성을 위해 어린 와인을 오크 통으로 옮긴다. 와인은 오크통 속에서 거친 사과산을 더 부드러운 젖산으로 전환하는 2차 발효 과정인 말로락틱Malo-Lactic 발효를 거친다. 산도는 낮아지고 더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다.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후 병입한다. 추가적으로 숙성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판매한다. 예전에 토스카나Toscana의 몬탈치노Montalcino에 갔을 때 최소한 오크통에서 2년, 병입해서 1년 이상 숙성시켜야 ‘브루넬로디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고 오크통에서든 병입해서든 합해서 1년 이상 숙성기간을 거치면 ‘로소디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라고 부른다는 기억이 난다. 에트나 산 근처의 레드와인은 대부분 Rosso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봐서 토스카나의 ‘브루넬로디몬탈치노’와 같이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만드는 고급와인은 없는 듯했다. 화이트와인은 에트나비안코디오시Etna Bianco DOC라는 이름을 가졌다.

코타네라 와이너리의 양조장

양조장 투어가 끝나고 나서 본관의 로비 테이블에 앉아 와인 테이스팅을 했다. 빵과 함께 여러 종류의 치즈를 곁들여 테스팅을 하니 허기진 배 탓인지 꿀맛이었다. 세 종류의 와인은 모두 프랑스 와인이나 토스카나 와인처럼 깊은 맛과 풍미는 부족한 듯했다. 아무래도 숙성기간이 짧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에트나로소디오시Etna Rosso DOC는 풍부한 과일 향, 단단한 탄닌 그리고 균형 잡힌 산도까지 가지고 있어서 복합적인 풀바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당할 것 같았다. 바바잘레로소Barbazzale Rosso는 스파이시한 피니시를 가진 미디엄 바디다. 이 지역 와인의 역사는 시칠리아의 전통적인 와인산지 마르살라Marsala와 달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최근 활발한 외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와인의 높은 품질과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는데 에트나 산의 독특한 떼루아Terroir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산 토양이 높은 고도의 서늘한 기후와 결합되어 복잡하고 우아한 아로마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빡빡한 일정의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뒤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휴식을 취한 뒤 재충전되어서 그랬을까? 여자들은 밤이 깊어 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맨 마지막 손님이 막 일어서려고 할 때쯤 우리도 일어섰다. 시칠리아의 두번째 날이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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