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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승 Nov 24. 2023

유럽의 고향 시칠리아(6)

영화<대부>의 무대 사보카, 바 비텔리와 산니콜로 성당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가이드와 함께 사보카로 향했다. 


타오르미나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사보카Savoca는 포르자다그로Forza d’Argro와 함께 영화 <대부I>의 무대가 된 마을이다. 원작 마리오 푸조(Mario Puzo) 소설의 배경은 팔레르모주의 콜레오네 마을이었다. 하지만 프란시스 코폴라(Francis Coppola) 감독은 시칠리아 북동쪽 메시나 지방의 작은 언덕 마을인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했다. 촬영 당시 콜레오네 마을은 경찰과 지역 마피아 간의 충돌이 있어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촬영하는 것이 어렵고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콜레오네 가족의 호화롭고 부유한 세계와 밑바닥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시칠리아 시골 모습 사이의 시각적 대조를 보여 주고 싶었다. 또 그는 중세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포르자다그로의 중세 건축과 풍부한 역사적 배경이 영화의 진정성과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콜레오네 마을이 아닌 사보카와 포르자다그로에서 촬영하기로 한 코폴라 감독의 결정은 실용적이면서도 역사적 배경이나 미학적 요소가 고려되었던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실증적인 배경 설정과 객관적 묘사에 충실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큐멘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이 그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감동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각색은 필요하다. 실화 속에 담긴 그 메시지에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정치적이지 않다면 관객은 얼마든지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아닌게 아니라 사보카 마을은 경치가 좋고 아름답지만 소박한 건축물과 시골 풍경으로 이러한 대비를 위한 완벽한 배경을 제공하는 장소인 듯했다. 9월 사보카의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따뜻했고 형형색색 풍성하게 핀 꽃들이 마을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더했다. 부르겐빌레아 뿐만 아니라 제라늄, 자스민, 올레안더, 히비스커스가 마을 여기저기에 허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사보카는 전통적인 석조 주택들이 늘어선 사이의 좁은 자갈길과 오래된 성당이 유명하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는 바 비텔리(Bar Vitelli)이다. 

영화속의 바 비텔리와 현재의 모습

뉴욕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로 도망친 마이클 콜레오네Michael Corleone(알 파치노가 연기)가 아폴로니아 비텔리를 바 주인인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은 곳이다. 둘은 즉시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마이클을 겨냥한 차량 폭탄으로 아폴로니아가 사망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이 사건으로 마이클은 조직 범죄의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들고 그의 아버지인 비토 콜레오네(Vito Corleone)(말론브란도Marlon Brando가 연기)로부터 패밀리 비즈니스를 물려받게 된다. 바 비텔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시작된 곳이다.


우리 일행은 마을 입구에 있는 바 비텔리 근처에서 버스에 내렸다. 우리 말고도 여러 대의 버스가 마을 주차장에 있었는데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미국사람이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2년이상 올 수 없었기 때문일까? 관광객이 아주 많았다. 우리는 이들과 섞여 마을 꼭대기에 있는 산니콜로 성당으로 올라갔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길옆을 보니 예쁜 화초가 없는 집이 없다. 길가 화단에 심었던지 화분에 담아 문이나 창가에 걸어 놓았다. 가이드가 길옆에 있는 열매를 따서 보여주며 케이퍼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허브의 한 종류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최사장님 부인이 훈제 연어와 함께 먹는 케이퍼 피클과 같은 것이냐고 묻는다. 지금까지 열매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가 맞다고 한다. 케이퍼 피클은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소금에 절인 것이라고 한다. 꽃핀 모습을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모두 꽃망울만 달고 있었다.


이 길은 영화에서 마이클과 아폴로니아가 산니콜로 성당에서 혼례성사를 치른 뒤 동네악단의 음악에 맞춰 행진하면서 내려오던 길이다. 그 두 사람은 그들 앞에 다가올 비극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가이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덧 성당 앞이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 복잡한 프레스코화가 벽과 천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수의 생애와 성인의 이미지, 혹은 성경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섬세한 붓놀림이 인상적이었다. 이외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한 제단과 조각상은 성당 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기 충분하였다. 이 성당은 영화 <대부>가 개봉된 후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고 영화의 팬들 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예술적 의미에 관심을 가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속에서 마이클과 아폴로니아가 혼례성사를 치르는 모습과 행진하는 모습

산니콜로 성당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다시 버스가 주차해 있는 바 비텔리Bar Vitelli에 이르렀다. 한참 기다린 뒤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이 많아 자리가 날 때까지 2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이오니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한 이 바는 영화 <대부>속에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지금도 여전히 운영 중이며 영화 <대부> 팬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 바를 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라니타를 주문해서 먹는 것이 필수코스다. 가이드 말로는 영화 속에 아폴로니아가 그라니타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라니타는 시칠리아섬에서 전래된 반건조 디저트의 일종으로 라임, 레몬, 그레이프후르츠 등의 과일에 설탕과 와인 또는 샴페인을 넣은 혼합물을 얼린 이탈리아식 얼음 과자이다. 입자가 곱고 당도가 높은 샤벳sorbet과 달리 그라니타는 신맛과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입자가 거칠다.   

레몬 그라니타와 패션후르츠 그라니타

이 바의 외관과 내부는 영화를 촬영했던 당시 모습과 장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손님들은 영화에서 콜레오네 가족과 손님들이 식사를 했던 것과 같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영화속에서 이 바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장면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벽에 붙어 있다. 코폴라 감독은 2012년 영화 개봉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연진, 그리고 제작진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 전후에도 그는 그의 팀과 함께 사보카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사보카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는 사보카에 대한 큰 애정으로 답하고 있는 것이다. 

바 비텔리에는 영화속의 여러 장면 사진들이 액자에 담겨 벽에 붙어있다

나는 알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이끌려 <대부>를 다시 보곤했다. 지금까지 다섯번 이상은 족히 보았던 것 같다. 가족을 보호하고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은 분명히 선이다. 반면에 무엇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악이다. 그런데 지켜야 할 그 무엇이 패밀리이고 이를 위해 살인을 포함한 어떠한 악행도 불사한다면 이 영화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해석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보통의 경우 악당들은 사이코패스처럼 그 누구에 대해서도 애정이나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콜레오네 가문의 보스는 차가운 표정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패밀리와 비즈니스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조직범죄에 연루된 콜레오네 가족의 복잡한 모습과 그들의 불법적인 사업 활동이 인간관계와 도덕적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지점이 바로 선과 악의 교차점이다. 바 비텔리를 나와 다음 행선지인 <대부II>의 무대가 된 포르자 다그로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마이클과 그의 아버지 비토 콜레오네의 이 교차점의 좌표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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