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지 피부
세상천지에 이렇게 대차게 짜증 나는 상황이라니, 수부지피부라면 다들 한 번쯤 겪어봤을 짜증이다. 손바닥만 한 얼굴 한 뙤기에 과도하게 비옥해서 흘러넘치는 피지와 버석버석 말라 쩍쩍 갈라지는 대기근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마와 콧잔등에서는 흘러넘치는 개기름으로 화장이 벗겨지고 양 볼은 수분이 부족해서 벌겋게 홍조가 올라오는 와중에 턱라인은 각질이 올라온다. 완벽한 지성도, 완벽한 건성도, 각자의 고민과 애환이 있지만 수부지의 고민도 못지않게 깊다. 하늘이 주신 꿀피부 중성은 넘어가도록 하자(공자께서 괜히 중용의 덕을 그리 강조하신 것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나는 지성에 가까운 중성 피부였다. 피부는 늘 반짝반짝 광이 났는데, 좋게 말하면 광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기름이었다. 갸스비 기름종이를 한 장 다 쓰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으므로 반으로 잘라 틈틈이 기름을 뿌셔주면서 뽀샹 뽀샹 파우더를 한 번씩 더 눌러주면 그만이었기에(어차피 커버할 잡티도 없고)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 서른이 넘어가며 출산을 하고 나니 얼굴에 양극화는 내가 모르는 사이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너무 멀어져 있었다. 이제 갸스비 기름종이는 아직도 네이버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에게는 없어선 안될 꿀템이겠으나, 나에게는 그걸로 기름을 뽑아내는 순간 피부가 10년 늘어 보이는 주름살 제조템으로 전락했다. 갸스비 미안... 니 탓이 아냐.. 내가 늙은 탓이지,, 이제 널 놓아줄게... 대신 나는 갸스비보다 섬세하게 유분을 조절해 주고 그것으로 인한 좁쌀여드름을 퇴치해 줄 든든한 새 친구들이 필요했다. 이상하게 이런 건 귀찮치가 않어!! 나는 미친 듯이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 화장품 공홈에 상세페이지를 독파해 가며 내 이마를 컨트롤해 줄 소중한 아이들을 주문했다. 상황은 그때그때 달랐고 계절과 습도와 심지어 나라에 따라서도 다른 아이들이 필요했다. 누가 말했지. 하늘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고, 하늘아래 같은 색조가 없듯이 향과 제형과 발림성과 흡수성과 지속성도 같지 아니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첫 번째 내 사랑은 라로슈포제 세로징크 세범 컨트롤 토닝 미스트이다. 쓰고 보니 엄청 긴데 그냥 온라인에서는 기름종이 미스트라고 불린다. 근데 그건 좀,, 뻥이 쫌 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름종이처럼 내 기름을 인정 사정없이 뽑아가는 놈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게 아주 딱이었다. 세심하게 적당하게 유분과 수분을 지켜주면서 기름의 공격을 시간차로 막아내며 곱게 곱게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스트다. 습도가 높은 한국에 가면 항상 세로징크 미스트를 쓴다. 아무래도 건조한 독일에서는 뿌리면 겁내 얼굴이 땡기지만 온통 공기 중에 수분 낭낭한 한국의 여름에서는 얼굴에 올려주는 첫 스텝으로 이것만 한 것이 없다.(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라로슈포제 오떼르말 미스트로 바꾼다) 충분히 얼굴에 고루 분사하고 화장솜에도 넉넉히 뿌리고 녹색병 눅스 오일 한 방울을 떨어트려 결대로 피부를 한번 가볍게 쓸어준다. 미스트에 수분은 피부 속에 세포들을 통통하게 채워주지만 피부 결 바깥의 얇은 솜털과 각질을 잠재워 주는 것은 가벼운 오일이다. 눅스오일을 쓴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지금 쓰는 눅스 윌 프로디쥬스 멀티 네롤리 오일은 수부지 피부에도 꽤 괜찮은 느낌이다. 오일 같지 않은 가벼움과 실키한 느낌 때문에 발림성은 좋으나 솔직히 냄새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향은 호불호가 매우 극명한 파트이므로 넘어가고 일단 그거 외에는 매우 다 만족! 이 오일을 미스트를 충분히 적신 솜에 한번 칙 분사해서 아주 부드럽게 결대로 쓸어주면서 아주 얇게 레이어링 해주면 얼굴이 공기처럼 가볍게 코팅되면서 그 안쪽에서 세로징크가 제 할 일을 잘 해낸다. 이 정도로 기초를 다진 뒤에는 가벼운 에센스와 수분크림을 얇게 얹어주면 화장이 찰떡같이 잘 먹고 유지도 잘 된다. 만약에 조금 더 화장을 오래 지속해야 하는 날이라면 티존과 유존에게 각기 다른 제품들을 얹어준다. 티존에는 모공 타이트닝 기능과 피지조절 기능이 있는 제품으로, 유존에는 수분과 유분을 적절하게 채워 줄 수 있는 제품으로 골라야 한다. 근데 이게 또 광이나 결을 살리는 화장을 좋아하는 사람과 매트하고 완벽하게 얼굴을 커버하고 싶은 사람에 따라서 제품이 나뉜다. 아 심오한 코스메틱의 세계. 이러니, 이걸 다 테스트하며 변태같이 좋아하는 내가, 시간을 빵 먹듯 잡아먹고 통장이 텅장이 될 수밖에,, 여하튼 세럼과 크림은 다음 기회에!!
(feat. 라로슈포제 세로징크 세범 컨트롤 토닝 미스트, 눅스 윌 프로디쥬스 멀티 네롤리 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