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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돌이 Aug 22. 2024

너 이거하면 "선생님" 소리 들을수 있어.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꿈을 처음으로 가져본게 언제일까.


이미 다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보니 국민학교 5학년때쯤이 아닐까 싶다.

4학년때 제주도 가는비행기를 처음 탔었고 

늘 올려다만 봤던 구름을 내려다 보는게 내가 뭐라도 된것 같은 기분을 느겼던것 같다.


처음으로 꿈이란걸 가져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내 마음대로 어디든지 다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태워줘야겠다.

그래. 나한테도 꿈 이라는게 있었구나.


1993년  MBC 드라마 파일럿을 했을때 나는 목표는 더 진해졌던 것 같다

'파일럿을 하면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저렇게 이쁜 사람들과 같이 지낼수 있구나'


이후에 너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파일럿' 이라고 대답하고 다녔다.

꿈에대한 질문은 성장과 같이 따라오는 공식같은것이었고 어느순간부터 꿈에대한 깊은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대답을 했다.


아마 고등학교때 쯤이었을것 같다. 

파일럿이 되는 가장 가까운 길은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해야하는 것 이란걸 알게되었고

나의 시험점수는 "공사"는 커녕 "공사장"근처에 머물러 있다는걸 실감했었고.

차선책인 항공대의 점수도 나에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 이었다.


그 이후의 꿈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하지도 않았고 수십번 이상 바뀌었기 때문일거다.


선생님...


꿈이 수십번 바뀌는동안 나의 선택을 받지못한 직업이다.


30살에 보험을 시작하고 

회사 영업 챔피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10년쯤 보험영업을 해보니 영업이 뭔지 이제 좀 알것 같습니다"


나역시 10년쯤 지나니 깨닿는게 있었다.


"10년쯤 보험영업을 해보니 이 일은 내가 갈길이 아닌것 같습니다."


병신같이 그걸 10년이나 해보고 알다니..


처음 3년은 오기로 버텼다. 집에 돈한푼 못 갖다 주면서도


"너 보험한다고 나대더니 1년도 못하고 그만두는구나 . 너도 별수 없구나 .그럴줄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 이런 이야기를 듣는게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그냥 버텼다. 내가 가는길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달까.


4년정도 되니깐 고객도 늘어나고 약간의 스킬도 쌓인것 같고,

영업이 재미있을때가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성과를 이룰때의 쾌감이 있다.

하지만 모르고 있었다. 성과가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독이 쌓이며 내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었나보다.


6년차에 머리속에서 탁구공만한 뇌동맥류가 발견되면서 일을 쉬고 수술을 하고

겨우 복귀한 7년차에 처음으로 연도대상이란것을 받는다.


'너는 이 일이 맞지 않아' 라고 몸이 알려주는 심각한 이상신호를 

보험상품을 판매할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추가되었다는 긍정신호로 넘겨버리고 

보험의 삶을 연장했다.


이후에 맞닥뜨린 협심증 , 갑상선암, 이것들의 원인은 뭐 였을까.

나의 내면에 '너는 이 일을 하면 안돼 , 더 이상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면 안돼' 라는 신호를 애써 무시한 대가라고나 할까. 

자존심 하나를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것을 잃었다는것을 뒤늦게나 깨달았다.


매일 받는 거절을 ,  

이제 자존감에 굳은살이 배겨서 괜찮다고 매일같이 자위를 했지만

낙수는 바위도 뚫는다고 했던가.

자존감이 떨어지다 못해 땅을파고 지하로 들어갔던 무렵


누군가

"갑돌아. 시에서 교육해주고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미래채움" 이라는것이 있어 . 너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수 있으니 지원한번 해봐."


"저는 소프트웨어 그런거 모르고. 보니깐 '코딩' 이런거 하는거네요 저는 그런거 못해요"


"이거 지금 처음 아니고 몇 번 했었고 보통 경력단절 여성이나 취업준비생들이 하는데 니가 못할께 있어. 그냥 교육이나 받아봐. 공짜인데"


"에이 관심 없어요. 다음에요"


"너 이거 하면 '선생님' 소리 들을수 있어"


"?" 


선생님이라...지금까지 수십번 바귀었던 내 꿈, 그 많은 꿈의 리스트 밖의 직업이다.


"선생님이요? 


"그래 선생님. 학생들 가르치는데 그럼 선생님이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


3년이 지난 지금

지금나는 꽤나 바쁜 강사이다. 

짧은 시간에 잘 풀려서인지

아니면 이제서야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서인지

강의의 영역을 점점 넓혀나간데 유효했는지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것 외에 

교육청과 연계해서 학교 선생님이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더 많이 하고있다.


내가 다른일을 하고있었을때 그말을 들었거나.

아니면 보험을 하면서 자존감이 괜찮았을때 "선생님"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과연 그 선택을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극에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는

좋은 의미던 안 좋은 의미든

파워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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