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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새 Mar 12. 2023

달래 크림 마들렌

2023년 3월 둘째 주의 마들렌

잠에서 깨어나니 밤새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끌려가서 멍석말이라도 당한 듯 온몸이 욱신거리며 무언의 아우성을 질렀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겨우내 얼었던 관절 여기저기가 사르르 녹아내리며 움직이기가 한결 편해져야 할 것 같은데, 물에 푹 젖은 솜처럼 한없이 무거운 내 몸은 좀처럼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언제 마지막으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기에 그다지 새삼스러운 것 없는 일상이지만, 요즘의 몸 상태는 조금 너무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봄에는 계절의 변화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증상을 춘곤증이라고 부른다. 어머니 역시 부쩍 피곤함을 호소하시는 걸 보면, 내 몸 상태도 별다른 이상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보통 2~3주가 지나면 점차 몸 상태가 회복된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아마 적어도 3월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그래도 고열이 난다거나,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어서 신경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일은 없으니, 그나마 괜찮은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몸은 다소 힘들지만, 조금씩 일렁이던 마음속의 파도도 점차 잠잠해지는 듯하니, 이대로 환절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


한낮의 기온이 무척이나 포근했던 어느 날, 오랜만에 걸어서 집 근처 마트에 방문했더니 봄을 알리는 봄나물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봄나물들은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서 춘곤증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봄이 되면 파릇한 봄나물을 뜯어먹으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웠던 옛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나물을 따로 챙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봄나물이 괜스레 반갑게 느껴져서 마들렌에 한 번 사용해 볼까 고민하며 간단하게 몇 가지 나물을 골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늘 만든 마들렌은 바로 달래 크림 마들렌이다.



요즘은 하우스 재배의 영향으로 웬만한 나물들은 사시사철 섭취가 가능하지만, 달래는 냉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봄나물로 손꼽히는 채소이다. 쪽파처럼 푸릇하고 가느다란 잎에 동그란 비늘줄기와 뿌리가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보통 잎과 비늘줄기 부분을 식용으로 사용한다.


비늘줄기 부분은 작은 양파처럼 생긴 동그란 형태의 기관으로 알뿌리라고도 부르는데, 알리신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쪽파나 대파를 잘게 다져서 크림치즈와 섞은 파 크림치즈 필링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마트에서 달래를 본 순간 ‘달래 크림치즈를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파를 이용한 크림치즈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분명 비슷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달래 특유의 향까지 더해지면 더없이 완벽한 봄맞이 마들렌이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달래는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오신채에도 들어갈 만큼 원기 회복과 자양 강장에도 효과가 좋다고 하니, 달래를 먹고 조금은 기운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들었다.


대파나 쪽파의 경우, 크림치즈와 섞기 전 불에 살짝 볶아 향을 극대화하면서 수분감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달래는 불에 익히게 되면 영양소 손실이 꽤 커서 그냥 생으로 잘게 다져 사용했고, 다소 강한 매운맛이 느껴질 것을 대비하여 적당량의 꿀도 섞어주었다.


마들렌 반죽에는 아주 곱게 빻은 깨를 넣어주었는데, 깨의 향이 달래의 풍미를 방해하지 않도록 아주 소량만 사용해서 은은한 고소함을 더했다.



최대한 많은 달래 크림을 채우기 위해 풍성하게 부푼 마들렌의 속살을 아낌없이 파내다 보니 다소 아까운 마음도 들었는데, 완성된 달래 크림 마들렌을 베어 문 순간 아까운 마음은 사라지고 매력적인 달래 크림의 풍미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알싸하면서도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달래 특유의 풍미가 크림치즈의 느끼한 맛을 완전히 지워버렸고, 적당히 달콤한 꿀의 풍미가 매콤하면서도 파릇한 맛 때문에 자칫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달래 크림이 온전히 디저트의 영역에 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여기에 깨의 고소함까지 은은하게 더해지니 어머니도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셨다.


오늘, 봄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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