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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새 Mar 26. 2023

티라미수 마들렌

3월 넷째 주의 마들렌

비가 오락가락하는 꿉꿉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집에 곰팡이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크면서 습도까지 높은 날씨엔 곰팡이를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추위에 취약하여 아직도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안팎의 온도 차로 인한 습도와 따뜻한 실내 온도로 인해 요즘의 우리 집은 곰팡이가 폭발적으로 번식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하루 이틀에 한 번 곰팡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금세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나는데, 이번 주는 미세먼지가 심각해서 환기도 어려운 데다 습도는 80%를 넘나들 정도로 높아서 곰팡이가 무서울 정도로 퍼져나갔다.


짐이 가득한 안쪽 벽은 깨끗하고 베란다와 맞닿아 있는 텅 빈 쪽 벽에만 끝없이 곰팡이가 생기는 걸 보면 따뜻한 실내 온도와 안팎의 온도 차로 인한 높은 습도가 근본적인 원인이 분명하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다. 대형 건조기로 하루에 한 번 벽을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덕분에 생일을 기념해서 상태가 오락가락한 오븐을 바꿔볼까 했던 생각을 접고 제습기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데, 사실 제습기로 해결이 될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체력이 약한 터라 별 도움은 안 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도와 매일 곰팡이 퇴치에 힘을 쏟고 있는 요즘인데, 이번 주는 어머니가 갑자기 앓아누우셔서 내가 곰팡이 퇴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결국 이틀 정도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지 예의 주시하면서 설거지나 식사 준비와 같은 소소한 집안일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며칠 만에 회복하셨지만 나는 안 그래도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무리를 한 건지, 어머니가 회복되신 이후로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몸이 피곤한 탓인지 저녁 무렵이 되면 눈 아래가 슬쩍 부어있거나 얼굴에 염증이 생기기도 했는데, 어제는 급기야 눈동자 표면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룻밤 만에 곱게 가라앉아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 대신 오늘은 광대 부근이 한 대 맞은 것처럼 잔뜩 부어오른 걸 보면 어쨌든 내 몸이 요즘 나한테 불만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곰팡이가 자라나는 벽을 쳐다보면서 쫄쫄 굶은 채로 누워있을 순 없었으니까 불만을 가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봄날의 인내를 운운하던 저번 주가 무색하게 진흙을 잔뜩 묻힌 개가 마음의 방을 뛰어다니고 있는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머니도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셨고 나도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이만하면 감사한 일이라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


마음의 방 여기저기에 묻은 진흙이 말라붙어 바닥엔 흙먼지가 잔뜩 떨어졌지만, 그저 조용히 털어내면서 이번 주의 마들렌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티라미수 마들렌을 만들었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이다. 커피에 적신 쿠키와 계란을 섞은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번갈아 가며 쌓은 후 카카오 파우더를 뿌려서 완성하는데, ‘밀다, 잡아당기다’라는 뜻의 ‘티타레(tirare)’에 ‘나’를 뜻하는 ‘미(mi)’ 그리고 ‘위’를 뜻하는 ‘수(su)’를 합쳐서 말 그대로 ‘나를 들어 올린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만들려던 마들렌을 만들기엔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서 고민하던 차에 춘분이었던 3월 21일이 ‘국제 티라미수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한껏 가라앉은 내 기분도 조금 끌어올리고 작년 이맘때쯤 봐둔 구운 티라미수 레시피도 응용해 볼 겸 티라미수 마들렌을 계획하게 되었다.


구운 티라미수는 마스카르포네를 잔뜩 섞은 반죽에 카카오 파우더와 커피 가루를 뿌려 구운 뒤 커피시럽을 흘려 넣어 만드는 구움 과자였는데, 과하게 무거운 맛이 싫어서 마스카르포네 대신 일반 크림치즈를 섞고 얼마 전 볶아 둔 원두를 아주 곱게 갈아 발로나 카카오 파우더와 섞어서 표면에 잔뜩 뿌려 구워냈다.



적정 온도를 맞추지 못하는 메롱 한 오븐 상태에도 불구하고 마들렌은 적당히 잘 부풀었고, 표면에 뿌린 가루와 크림치즈가 잔뜩 들어간 반죽이 대비를 이루면서 제법 마음에 드는 무늬가 만들어졌는데, 직접 우린 콜드브루와 커피 술을 섞어 만든 시럽이 생각보다 진득해서 제대로 마들렌에 흘려 넣지 못해 아쉬웠다.


시럽이 더해질 걸 고려해서 레시피를 만들었기 때문에 식감이 다소 퍽퍽했지만, 커피와 함께 먹으니 영락없이 티라미수가 떠오르는 맛이라 괜스레 웃음이 났다.


티라미수 마들렌을 먹고 기운을 차렸으니, 오늘 저녁엔 봄꽃을 보면서 산책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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