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 주의 마들렌
#거울새_봄동산마들렌
나는 곰팡이가 너무 싫다.
사실 우리 집은 곰팡이를 키우기 정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건물이 산 바로 밑에 위치하고 길 건너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서 평균 습도가 조금 높은 편이고, 나 때문에 집안 온도는 사계절 내내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요즘은 극심한 미세먼지로 환기가 어려운 데다 일교차도 커서 점점 더 최적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이번 주엔 비가 오락가락하며 습기를 잔뜩 불어넣는 찌뿌둥한 날씨가 이어지고 간신히 내리쬐던 햇살 한 줌마저 며칠째 사라지면서 드디어 곰팡이를 위한 집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 금귤 정과에도 곰팡이가 폈다.
금귤 정과란 무엇인가.
‘정과’는 생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또는 열매를 꿀이나 설탕에 쟁이거나 조려서 만든 한국 고유의 과자류를 칭하는 말이며, ‘금귤’은 흔히 ‘낑깡’이라고 부르는 방울토마토 크기의 감귤을 말한다.
결국 금귤 정과는 금귤을 설탕에 조려서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의 과자류인데, 보통 3~4일에 걸쳐서 조려내며 시럽을 걸러낸 뒤 3일 이상 건조해서 완성하는 정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금귤 정과를 만들고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몇 주 전으로 돌아간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프랑스 크림 홍보 캠페인에 대한 포스팅을 본 나는 참여할 생각도 없으면서 괜스레 레시피를 고민해 봤었는데, 문득 말린 봄나물을 갈아 넣은 그릭 요거트와 금귤 정과를 이용해서 꽃이 가득 핀 봄 동산을 마들렌으로 표현하면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챌린지에 참여한다면 그릭 요거트가 아닌 크림을 사용해야 했겠지만, 어차피 나는 챌린지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고 봄을 주제로 한다면 크림보다는 좀 더 가벼운 느낌의 그릭 요거트가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재료 준비가 무척 까다롭긴 해도, 생각해 보면 실제로 충분히 만들어볼 수 있을 만한 마들렌이었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금귤을 보고 우연히 떠올린 아이디어였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금귤을 구매하고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몇 주간 건강 상태를 살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내 컨디션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계획은 끝없이 연기되었다.
그러던 중 사둔 지 2주가 넘은 금귤의 상태가 걱정되어서 밑 재료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하고 저번 주에 일단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금귤 정과를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실제로 약 5일에 걸쳐 금귤 정과를 성공적으로 조려냈고 이번 주에는 실온에서 말리는 과정을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 역시 몸 상태가 큰 차도를 보이지 못했고, 컨디션 악화로 수면의 질도 상당히 떨어져서 며칠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또다시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실온에서 건조를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며칠째 오락가락하는 비와 꿉꿉한 날씨 때문인지 다시금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곰팡이를 바라보며 문득 건조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금귤 정과가 떠올라서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그냥 먼지가 묻어있는 거라 생각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주 작은 곰팡이였다.
월세도 내지 않으면서 뻔뻔스레 우리 집을 침범하는 저 곰팡이.
사실 이번 주에 취나물도 건조해서 가루를 만들어 놨고 그릭 요거트만 만들면 밑 재료 준비는 끝나는 일이었는데, 아직 제대로 맛도 못 본 금귤 정과는 몇 주간 그렇게 기회만 엿보다가 홀연히 가버렸다.
다행히 마들렌에 사용하려고 따로 빼서 모양을 잡아 얼려둔 금귤 정과가 한 덩이 있었는데, 그게 나의 마지막 금귤 정과였다.
금귤을 다시 사야 하나 싶어서 마트에 가보니 이미 금귤은 매대에서 사라졌고, 인터넷에서 주문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운이 쏙 빠져서 그만 자리에 누워버렸다.
어머니께서 그런 건 기운 뻗치는 애들이나 만드는 것이라며 위로해 주셨는데, 뭐 크게 틀린 말도 아니라서 웃음이 났다.
이번 주는 다 치우고 쉴까 하다가 그래도 남아있는 재료들로 기분이나 낼까 해서 몇 가지 재료를 대체한 봄 마들렌을 완성했다.
원래 만들려던 금귤 마들렌 대신 저번 주에 만든 홍차 마들렌을 사용하고 그릭 요거트 대신 크림치즈를 쓰긴 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최대한 원래 계획한 대로 진행했는데, 세세한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많아서 솔직히 많이 아쉬웠다.
올해는 완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 것 같고, 내년엔 좀 더 제대로 꽃이 핀 봄 동산을 완성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