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짓기
“아무리 별로인 일을 하고 있어도, 나는 성공한 서울 대학생인 거야.”
엄마는 큰외삼촌에게 수학을 배우며 스스로가 돌머리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내 머리는 돌이구나” 슬픈 인정을 했을 때, 그즈음 친구를 따라간 미술학원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에 있는 대학을 가라는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지원했다. 입시 시험에 나온 건 수탉을 그리는 거였다. 그날따라 무척 잘 그려졌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똑 떨어질 게 분명한데, 혼자 보냈다가 나쁜 생각할 수 있다며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오빠와 함께 결과발표를 보러 서울로 왔다. 합격자 대자보에서 엄마의 이름을 찾고 큰오빠는 본인 대학 붙었을 때보다 더 좋아했다고 한다.
방학이 되면, 장항으로 내려와서 지냈다. 종종 할머니를 따라 딸기를 따러 가기도 하고 생선도 다듬으며 여러 알바를 했다. 그럼 “얘가 그 서울서 대학 다니는 딸이 이야?”라며 물어오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무리 거지같이 입고, 별 볼 일 없이 있어도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것만으로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졸업이 가까워지니, 실패해서 고향 내려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 자신은 상상할 수 없었다. 홍대 미대도 아니고, 하필 또 디자인 쪽도 아니고 전통 서양화를 전공해서, 알바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겨우 얻은 알바자리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에서 1시간 넘게 가야 있는 작은 미술학원이었다.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 동아줄 같은 소문을 들었다. 앞으로는 사대 졸업생도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그런 시험이 생길 거라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임용고시 1차 시험이 열린다는 공지도 나기 전부터, 독서실에 가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시험 준비 과정은 꽤나 처절했다. 공원 옆 독서실이 제일 저렴해서 형편에 맞았다. 그런데 중학생 아이들로 가득 차서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공부는 고사하고, 맨날 자고만 오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당시 대학 독서실은 대면으로 인증하고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새벽에는 학생증을 체크해 주시는 분이 출근하기 전이라, 검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근처에 있던 서울대 독서실에 새벽에 몰래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도 없어, 화장실도 못 가고 공부하는 거야” 라며, 그때 열등감도 참 많이 느꼈다고 했다. 서울대 얘들은 뭘 해도 멋져 보였다고, 심지어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멋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열등감을 잔뜩 충전하고, 맘먹고 동네에서 젤 비싼 독서실을 끊었다. 하루 00원, 엄마는 도저히 가서 졸 수 가 없는 금액이었다고 표현했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산 결과, 첫 번째 임용고시 시험의 합격자가 될 수 있었다.
아직도 엄마는 종종 “나 임용고시 됐어!”라고 집으로 전화해서 말하는 상상을 수십 번 했다는 말을 종종 해준다. 머릿속에 계속 성공한 모습을 그려봤단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고향 떠나 타지에 뿌리내리려고 어떤 고군분투가 있었는지 말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엄마의 집짓기 과정을 지켜보면서, 엄마가 가지고 있는 집념과 끈기를 처음 봤다. 그런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각조각 들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하나의 글로 엮어내니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아빠의 이야기로, 그리고 구체적인 집짓기 팁으로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