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덕산 호두마을에 올라간 첨성대

엄마의 집짓기

by 귤껍질

"동네 사람들이 첨성대를 지었다고 구경을 왔어"


엄마는 솔로지옥을 보면서도, 출연진보다 인테리어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좋은 걸 보면 시안 공간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먼저 떠오르나 보다. 그러니 당연한 수순처럼 공간에 계속 새로운 것이 추가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화덕이다. 정원의 공간에서 파티도 하고, 스몰웨딩도 하면서 시안의 공간이 수용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게 될 때 사용하기 위해 정원에 화덕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중에 숙박업을 할 때 온 손님들에게 고구마도 구워줄 수 있다며, 그 쓰임을 상상할수록 꼭 필요한 요소로 느껴졌다.

눈 오는 날, 화덕

신이 나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면서 조만간 좋은 화덕 하나 구매하고, 적합한 업체를 구해서 설치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직접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거다. 불을 피울 수 있게 아궁이를 설치하고, 남은 벽돌 사이 매질을 채워 쌓아서 작은 건축물을 올리는 일이었다. 1년 넘게 건축 현장에서 먹고 자고 한 경험치가 쌓여서 이제 뭐든 뚝딱뚝딱 두 분이 직접 해내기는 하지만, 화덕은 꽤나 고난도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웬걸, 오랜만에 방문한 천안에는 집 짓고 남은 벽돌로 첨성대를 닮은 건축물이 떡하니 올라가고 있었다. 가로는 내 누운 키만 하고, 높이 올라간 굴뚝은 아빠보다 컸다. 할머니댁에서 봤던 무쇠 가마솥이 한가운데 있고, 그 옆에는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싱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보리색 벽돌로 꽤나 세련된 화덕이었다. 주변의 흙바닥도 같은 벽돌로 깔끔하게 덮여 있었다.

아궁이
화덕과 의자들

도대체 어떻게 작업했냐고 하니, 엄마가 도면을 그린 뒤, 그걸 보고 전기 설비를 다룰 줄 아는 옆집 뚝딱이 아저씨가 기술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익숙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게 또 없어서, 작은 작업들을 직접 하다 보니 화덕 하나 올리는 건 일도 아니게 된 느낌이었다. 조각난 파벽돌은 그 나름대로 빈 틈을 채우는 데 사용하고, 온전한 벽돌로 화덕의 뼈대를 잡았다. 끝까지 이게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김장을 한 날 수육을 척척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제대로 된 화덕 하나가 만들어졌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시안 갤러리(신축)와 시안 하우스(구축) 사이에 들어선 화덕은 특별한 날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노트에 그렸던 도안

시골 골짜기에서나 볼 것 같은 아궁이가, 신축의 벽돌로 지은 화덕과 어우러진 것이 딱 우리 집 같다. 시골스러운 느낌과 현대적인 느낌이 같이 섞여 있다. 종종 아빠가 화덕에 불을 피우면 가까이에 앉아서 가만히 구경하고는 한다. 그러면 어릴 때 할머니댁에서 본 화덕이 생각이 난다. 밥을 짓는 데 사용되다가, 밥솥이 등장하면서 역할을 잃고 뭐든 태워버리는 마법의 쓰레기통같이 되었다가, 훔칠 것 없는 시골집에 들어온 도둑이 아궁이를 때어가면서 작별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불멍을 하다 보니, 아궁이에 뭔가를 해 먹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에 소소하게 감사해졌다.


햇살이 좋은 날 풍경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향 돌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