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원 Dec 30. 2023

할슈타트에서, 너에게

안녕. 올해가 이틀 남짓 남았네. 연말이면 감성이 폭발하듯 솟구치는 나와 달리 넌 늘 무던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는 했지. 나는 연말을 타는 내 자신을 못 견뎌서 여행길에 나섰어. 일만 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게 너무 싫었거든. 어제는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라는 호수 마을에 다녀왔어. 다른 나라이지만 마치 이 곳처럼 설산을 배경으로 한 호숫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네 생각이 나더라.


지금쯤 너는 연말 휴가를 보내고 있겠지. 연말 휴가 따윈 없는 너의 고국을 그리워하며. 고향에 못 간 지가 3년 반이 넘어간다며. 내년 3월에 드디어 한 달의 휴가를 내고 고향에 간다는 너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나는 네 들뜬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어.


너의 행복이 부럽더라. 나는 불행히도 고향을 잃어버린 기분이야. 누군가 내게 고향을 물으면 어디라고 답을 하지만 더 이상 그 곳에는 우리 가족도, 친구들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걸. 부모님은 시골에, 친구들, 형제는 경기도에 뿔뿔이 흩어져 우린 이제 서로의 세상을 공유하지 않는걸. 너처럼 그리워할 고향, 돌아갈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어.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아직도 듣는 것 같아. 가족이 내 세상이었던 때는 십 대에 끝이 났고, 친구가 내 세상이었던 때는 이십 대에 끝이 났고 다들 각자의 가정을 이끌어가는 삼십 대는 나의 가정, 그러니까 오롯이 나만이 내 세상이고 내 생활에 있어 고독은 그냥 기본값으로 있는건데.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혼자 여행이 외롭지 않냐니? 죄송한데 저 베테랑이거든요. 외로울 때가 간혹 있기는 하죠. 여럿이 있으면 괴로울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근데 그냥 헤쳐 나가는거예요.


그동안은 혼자 다녔지만 할슈타트에는 인터넷으로 동행을 구해 함께 갔어.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낯선 땅에서 같은 언어로 같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데에서 엄청난 동질감이 들더라. 몇 시간 함께 있었던 것뿐인데도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게 아쉽더라. 그 분들은 당일여행이라 해가 저물고 나서는 돌아갔고 나는 이 호수동네에 1박을 해보고 싶어서 남았어. 실컷 호수를 보며 멍때리기도 하고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도, 그 위를 헤엄치는 백조와 오리도 봤어. 눈이 건조해져서 시리도록 열심히 봤어.


네 고향에선 높은 봉우리에서 출발해 호숫가에 안착하는 패러글라이딩을 많이들 하지. 파란 하늘을 점점이 수놓은 그것들을 보며 하나, 둘 개수를 세던 그 때가 참 평화로웠어. 밤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그런 걸 처음봤던 나는 한강에서처럼 누군가 엘이디 장난감을 판매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깜빡이는 불빛들이 가까워져도 사람은 없고 불빛들은 무작위로 움직여서 깜짝 놀랐어. 네가 잽싸게 한 마리를 손 안에 가두어 내게 보여줬을 때 내가 본 건 단순히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아니라 순수한 놀라움, 생명의 가능성에 대한 경탄, 그리고 나에게 이런 감정을 보여준 너에 대한 존경이었어.


할슈타트는 정말 아름답더라. 그런데 패러글라이딩은 없었어. 반딧불이도 없더라. 네가 보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의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