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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Jun 27. 2024

쉰 아홉의 엄마, 카페 사장이 되다

저녁 8시, 퇴근을 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왜~"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로 기분좋게 전화를 받는 엄마. 그냥 걸었다고 했더니 아직 손님이 계시다며 이따 다시 전화를 하겠댄다. 엄마의 카페는 원래 7시 반에 닫는데, 이렇게 초과근무를 하게 되어도 마냥 신이 나나보다. 최근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 중 가장 들뜬 목소리였다. 오래 전 엄마가 이모, 사촌동생과 함께 북유럽으로 여행을 갔을 때도 이렇게 행복한 목소리였는데. 정말 아주 오랜만에 소녀같은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한 달 전 XX면 XX리 시골 동네에서 한옥카페를 열었다. 평소 엄마의 취미는 다분히 감성적이었다. 재봉틀로 커튼이나 앞치마, 원피스 등 부피가 큰 물건들을 뚝딱 만들고 그것들의 구석구석에 예쁜 자수도 놓았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거주하며 한 켠에는 채소를 기르는 텃밭을 두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꽃이나 나무들로 꾸몄다. 매일 아침 엄마의 첫 일과는 마당으로 나가서 엄마가 이름을 읊을 수 있는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에게 인사를 하고 물을 주고 예뻐하는 일이었다. 취미 생활을 할 때면 엄마는 늘 콧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할 수 있고, 그것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뭐 어쩌구 식물에서 새 잎이 났고 또 다른 저쩌구 나무에서 꽃이 폈는데 향이 좋은데다 예쁘기까지 하다는 둥 떠드는 엄마를 보면 그게 그렇게 좋을까, 신기했다. 내 눈에는 계절이 바뀌며 꽃이 피는 게 당연해서 기쁠 게 없었다. 하지만 기뻐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가지를 잘라주고 아침마다 물을 뿌리고 잎 상태를 살펴보고 이 아이가 건강히 자라기를, 때가 되면 새로운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기를 기다린다면 나도 기쁘겠지. 


어느 날 찾아온 공황장애 때문에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마주하고 네모난 강의실에서 서서 수업을 하는 것이 힘들어진 엄마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 자신이 오랫동안 가져온 취미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일. 푸릇푸릇한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을 가진 이모네 이층 한옥집의 일층을 빌려서 엄마는 사업을 구상했다. 엄마답게, 마당에 난 잡풀을 뜯어내고 예쁜 꽃과 나무를 심는 것부터 시작했다.


손님용 탁자와 의자를 구매해서 배치하고 내부를 분위기 있게 꾸미고 커피와 차에 대한 공부를 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고 메뉴를 구상하고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하고. 그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을테다. 몇 달이 넘도록 엄마는 너무 바빠서 연락을 하기가 어려웠다. 타지에 살며 엄마와 자주 통화를 하던 습관이 있던 나는 무척이나 서운했다. 엄마의 관심이 내게서 멀어져서, 몸도 마음도 다 멀어진 것 같아서. 카페 가오픈 기간동안에도 정신이 없어 보였는데 막상 오픈을 하고 나니 드디어 모든 게 자리를 잡았는지 엄마가 나와 통화를 할 여유가 생겼다. 오픈 일주일 밖에 안 됐는데 카페 한 켠에 진열해 둔 앞치마를 다 팔았다며 엄마는 들떠 있었다. 취미로 할 때는 여기저기 주변에 하나씩 나눠주고도 남아서 문제였는데 카페를 운영하니 엄마가 정성들여 만든 것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게되어 뿌듯한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세대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해서 두 자녀를 양육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엄마는 간호사여서 십 년 이상을 가정주부로 있었지만 대학 석사를 발판삼아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엄마가 일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십 대 시절엔 엄마의 일보다 내 생활이 더 중요해서 엄마가 일을 하느라 저녁식사가 늦어지는 게 싫어서 짜증을 많이 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었다. 지금 우리 엄마를 보면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 누구보다 '요즘 여성'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도 잘 다룰 줄 몰라서 유튜브 프리미엄 멤버쉽은 어떻게 하냐며 나에게 물어보는 평범한 아지매이다가도 무언가를 해야겠다 결심하면 아주 진취적인 자세로 해낸다. 해외로 자유여행을 가는 건 겁내면서 네이버에 전화를 걸어 스토어 오픈은 어떻게 하는지, 물건은 어떻게 올리고 배송은 어떻게 하는지 묻는 건 겁내지 않는다. 카페를 열기 이전에 이미 엄마는 네이버 스토어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과목이 있던 컴퓨터 세대이고 엄마는 아닌데도, 어쩌면 엄마가 나보다 컴퓨터를 더 잘하는 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카페 야외 테라스에 새로운 물품을 진열했다고 한다. 한옥 카페 덕택에 작은 시골 마을에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니 장을 담가서 파는 같은 동네 할머니께서 자기 물건도 함께 팔아주면 어떻겠냐고 하셨댄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물건을 이고지고 시장에 나가서 판매만 해봤지 네이버 스토어 같은 플랫폼도, 택배 신청하는 법도 모르니 우리 엄마도 돕고 싶으셨나 보다. 장류는 냄새가 강하니 카페 실내에 놓지 않고 바깥에 진열해서 흥미가 있는 손님들만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사업을 하며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고, 이렇게 서로 돕고 사는 지역사회까지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 아닌가? 우리 엄마라서 내가 과대평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때. 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나는 엄마를 닮아서 엄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미래를 짐작하곤 하는데 겉모습은 짐작이 된다고 해도 삶은 그렇지 않다. 과연 나는 이십 오 년 뒤에 엄마처럼 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을 할 용기가 있을까? 엄마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일을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된다는 엄마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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