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과 친구로 남는다는 건 십 년 전에는 나에게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불가능 뿐만이 아니라 불필요한 일. 순수한 우정으로 이어진 다른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뭐하러 헤어진 사람과 친구로 남아? 친구로서는 불필요한 정보들, 예를 들어 내 배에 있는 점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과 친구로 남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다음 연인이 내가 전남친과 친구로 지낸다는 것을 알게되면 불쾌해하지 않을까?
전 남자친구에서 그냥 친구로 지위가 변한 나의 첫 친구는 네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느라 2년 정도 거주하다가 나와 만나게 된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나는 첫 외국인 여자친구였다는 점에서만 특별했겠지만, 나에게 그 친구는 첫 외국인 남자친구이자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훌륭한 인간성을 가졌고 똑똑하지만 자만하지 않은, 자신의 지식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남녀 사이가 대등하고 서로간에 존중과 배려가 깊이 깔려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친구를 통해 배웠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말투와 말의 내용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의 모든 것들을 다 흡수하고 싶었다. 그를 처음 만난 지 이제 십 년 가까이 되어가고 그와 헤어진 이후로도 여러 번 연애를 했지만 그만큼 나에게 큰 임팩트를 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사람이다. 나에게는 종교가 없지만, 종교를 하나 꼭 가져야 한다면 그의 가치관을 교리로 따르는 신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는 꾸준히 이야기했다. 나와는 결혼할 수 없으니 자기를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말라고. 그의 나라에서도 특히 그의 주변 사람들, 그가 속한 사회는 보수적이었다. 그의 형이 다른 카스트에 속한 신분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그의 부모님은 형과 오랜 세월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내다가 결국은 손주가 태어나고 나서야 대충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간을 옆에서 직접 겪었던 그는 완고했다. 자신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다시 아프게 할 수 없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같은 카스트의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부모님과 대다수의 친척들이 참석하지 않은 형의 결혼식은 분위기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도 보수적인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 가능했다.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거스르고 부모와 연을 끊고 자기들끼리만 결혼식을 올리는 것, 드라마 속 남 일이면 모를까 절대 내 일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한국을 떠나며 우리는 자연스레 헤어졌다. 아직 서로 많이 좋아하는데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나 그는 나에게 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멘토이자 단짝의 역할도 했기에 그의 빈 자리는 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인과 멘토와 단짝을 한꺼번에 잃은 외로움과 서러움을 느꼈다. 그 당시에는 이게 가능한가 의구심이 들었고 말뿐이리라 싶었지만, 그는 서로에게 주고받던 좋은 영향을 기억하며 친구로 남자고 했다. 그리고 진짜로 그에게서 친구처럼 전화가 걸려왔다. 초반에는 쉽지 않았다. 그의 전화만 오면 눈물이 났다. 내가 자꾸 우니까 내 눈물의 씨를 말려버리려는 생각이었는지 그는 시차를 맞춰서 한국이 저녁시간일 때 즈음 수시로 전화를 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오늘 하루 뭘 했는지, 기분이 어떤지 같은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고 말을 시켰다. 어느 날 또 같은 시덥잖은 것들을 묻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맨날 힘든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비슷한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매번 이런 같은 답을 들을 게 뻔한데 왜 물어보는 거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구나. 얘는 내가 진짜 죽을까봐 걱정하고 있구나. 내 생사를 확인하려고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구나. 우리는 헤어지고, 당시에 신입으로 근무를 다니던 병원 일은 고되고, 학교를 졸업하니 친구들은 모두 멀리 흩어지고. 정말 세상 모든 불빛이 꺼져버린 것 같았던 시기에 어쨌든 누군가는 내가 삶을 놓지 않도록 관심을 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내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연락의 빈도는 줄었다. 그와 헤어진 이후로 나에게 다른 남자친구가 생기자 그는 기뻐해줬다. 그리고 여느 친구처럼,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해했고 연애 고민도 잘 들어주었다. 그는 멀리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단짝친구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새 남자친구는 유럽인이라 전에 만나던 사람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자연스레 여겼고 자신도 지난 여자친구와 친구로 지내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가끔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가 뉴질랜드로 대학원을 가게 되면서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나 또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내가 속하게 된 새로운 사회에 대해 더 자유로워져서 좋은 점을 나누고 불평도 했다.
그가 부모님의 뜻대로 선을 봐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한 번도 내가 먼저 연락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일 년에 네 다섯 번 즈음 통화를 한다. 우리 둘 다 메세지보다는 통화를 선호해서 메세지는 주로 지금 뭐하냐, 통화 되냐는 내용 뿐이다. 통화를 하다보면 가끔 할 말이 없어져서 몇 초 정도 공백이 생길 때도 있다. 통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과는 그런 공백을 어색해하고 못 견디는 편이다. 하지만 그와의 공백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같이 있을 때처럼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말을 시작하면 그는 항상 내가 먼저 말하도록 한다. 사실 그가 먼저 말을 하면 나는 내가 하려던 이야기를 잘 까먹는 편이기는 하다. 전화를 끊을 때도 그는 늘 내가 먼저 끊도록 한다. 내가 전화기를 귀에서 떼는 순간까지 자기는 들고 있겠다는 거다. 혹시라도 뒤늦게 내가 할 말이 생길까봐. 나에 대해 이렇게나 잘 알고 그런데도 나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이렇게 절친한 동성 단짝친구가 있긴 있지만, 이성 단짝친구도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기를 소망한다. 비록 내성적인 나와 달리 어딜가나 친구를 쉽게 만드는 성격의 그에게는 동성 친구든 이성 친구든 넘치도록 많이 있지만, 나 또한 그에게 특별하고 멋진 친구이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늘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요즘은 그림을 배운다, 집에서 쿠키를 구웠다, 글을 쓴다 같은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꼭 대단하다며 이런 저런 말로 나를 추켜세운다. 그럼 나는 스스로가 뿌듯해진다.
목소리로만 안부를 묻다보니 이제는 직접 만나면 어색해질 지경이다. 얼굴을 안 본지가 5년이 넘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안 해놔서 나는 그가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는 한국에 올 일이 없고, 나는 뉴질랜드 여행에 관심이 없고. 단순히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기에 항공권은 턱없이 비싸고 거리는 멀고. 우리는 이렇게 오 년을 넘어, 십 년, 이십 년 마주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서로에게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정말로 순수한 우정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넓은 우주에 같은 별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다가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데, 한국 땅에서 2년을 살며 마지막 해에 나와 교집합이 생겨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다니. 전생이란 게 있다면 전생에 우리는 무슨 사이였을까 궁금하다. 서로에게 목소리로 남은 지금, 몇십 년이 지나서 내가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고 돈을 못 벌게 되어도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그라는 친구가 내게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안심이 된다. 친하게 지내던 많은 동성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대화의 주제가 시댁, 육아로 넘어가 답답한 요즘같은 시기에 그는 여전히 나와 일 이야기, 휴가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나와 연인을 그만두고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가끔 퇴근길에 사는 게 너무나 삭막하고 지칠 때면 하늘을 본다. 지구 저 쪽 편,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의 끝자락 아래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에게서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가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게 나에게는 내일 하루를 더 힘차게 살아갈 연료가 된다.